식량, 토지, 물 시스템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분야
2023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열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그해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되며 ‘끓는 지구’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현재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재난이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극단적 이상 기후로 지구 공동체의 삶과 생물종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 책의 출간을 앞둔 2025년 여름, 기후변화의 폭력성은 더 명백해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 기후변화 분야의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극단적 이상 기후가 “더욱 빈번하고, 강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최근 발간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식량, 토지, 물 시스템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분야라고 인식하는데, 무엇보다 탄소 배출과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인 식량 시스템의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긴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음식정의는 어떻게 사회정의, 기후정의와 연결되는가?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에 “음식정의는 어떻게 사회정의와 기후정의와 연결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깊은 고민과 포용적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비인간동물’에 대한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에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연민을 읽을 수 있다. 저자들은 “음식정의를 이루려면 정의로운 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토지, 인간, 비인간동물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시작으로 식품 시스템, 동물산업복합체, 기후붕괴와 민주주의의 제반 이슈들로 논의를 확대해 나간다. 그리고 온정적 식품 시스템과 긍정적 변화의 방향에 대한 제언으로 논의를 마무리한다.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시켜온 노력의 결실이다. 처음에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동물을 ‘식품’으로 만들어 유통하고 소비하는 대규모 산업체계, 즉 동물산업복합체가 인간, 비인간동물, 생태계에 끼치는 다양한 폐해에 대해 개관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다루는 자료들은 많지만, 비인간동물을 ‘부가적인 내용’ 정도로 다루거나 비인간동물에게 주로 관심을 쏟는 독자층만을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정의와 기후정의라는 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엮어내는 자료는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인종차별, 계급주의, 동성애혐오, 성전환혐오, 장애인차별, 성차별, 종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맞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과 진정으로 ‘정의로운’ 식품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산업화된 식품생산 시스템하에서 비인간동물의 삶
이 책은 산업화된 식품생산 시스템하에서 비인간동물의 삶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비인간동물의 상품화가 ‘정상적인’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비인간동물에 대한 경시나 잘못된 이용을 정당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처우 개선을 위한 점진적 변화 방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특히 동물 복지와 관련된 방안일 경우, 이것이 오히려 현상 유지의 근거가 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한다.
산업적 식품 생산에서는 동물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다룬다. 성장 속도를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동물들은 과밀집된 실내에서 지내거나 격리 사육되는데, 비정상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지내도록 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로 고통스러운 신체적 변형에 시달린다. 닭은 서로 쪼아대지 못하도록 부리가 잘리거나 발톱이 제거된다. 수평아리나 병든 병아리는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분쇄기에 갈려 죽는다. 돼지는 서로 물어뜯지 못하도록 꼬리가 잘리고 임신 중에는 냉장고 크기의 수유용 우리에서 갇혀 지낸다. 젖소는 평생을 반복적 임신과 착유에 시달리다가 끝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또 전염병이라도 유행하게 되면 집단 살처분이라는 대량 학살을 당하기도 한다.
이 책은 동물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생명 파괴 행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온정과 정의가 한층 더 구현된 식품 시스템,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욱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투쟁의 주춧돌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학대한 것은 식민지배와 자본주의 역사, 그리고 백인이 아닌 사람들, 특히 선주민과 글로벌남부의 많은 이들이 견뎌야 했던 인간에 대한 학대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품 시스템에서 비인간동물도 노동자라고 인지하는 것은 이들의 고유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동물은 오로지 인간의 이윤과 식량을 위한 이용 가치 때문에 존재한다. 이 때문에 동물을 자본주의 체제하의 노동자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동물을 노동자로 규정하면 동물을 생산의 주체, 고통스럽고 착취적인 노동을 원하지 않는 주체, 건강한 삶을 해치는 일을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주체로 인식하게 된다.
식용 동물을 산업 생산하는 인간 노동과 ‘돌봄-살해 역설’
이 책은 동물을 식품으로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노동에도 초점을 맞춘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식품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하루를 보낸다. 농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패스트푸드점과 식료품 소매업 노동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또한 농업 노동력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은 주거와 복지 혜택 등의 필수 서비스를 고용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른 일반 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불안정한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돼지농장에서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한 네팔 노동자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사회학자 아널드 알루크가 처음 발표한 ‘돌봄-살해 역설’ 이론을 소개한다.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비인간동물에게 느끼는 의무감들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데 이 이론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동물보호소와 농장에서, 그리고 수의사로서 다른 동물을 정성스럽게 돌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을 죽이는 일을 담당한다. 이러한 모순은 심각한 심리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또 농부들은 눈앞의 동물을 한편으로는 개인적 관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으로 취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사회학자 콜터 엘리스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경계 노동”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런 심리를 반영하듯 전염병 유행시 대량 살처분을 실행해야 하는 축산 노동자와 수의사들이 심각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알코올 중독 등을 겪게 되는 상황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선주민 지식 체계와 인터뷰 참여자 28인의 지혜
캐나다 미그막(Mi"kmaq) 부족의 땅인 미그마기(Mi’kma’ki)에서 이 책을 집필한 저자들은 먼저 식민지 이주자들의 정착이 이 땅에 대한 불법적인 침략이자 약탈 행위였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영국은 이 땅을 조약을 통해 양도받은 것도,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뿐 아니라 전 세계 선주민 공동체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들의 땅을 무단 사용해 이루어지는 자원 착취나 식품 제조 등의 산업적 생산 시스템이 이들 선주민에게 끼치는 영향이 매우 일방적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동물들을 공장에서 식품으로 만들면서 생겨난 폐해 중 하나인 기후변화 역시 선주민 공동체에 일방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은 선주민 지식체계가 음식과 관련된 사회정의 문제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글로벌 시민의식이라는 광범위한 문제의 접근을 위한 기본 관점으로도 중요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이윤 추구와 과소비로 작동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의 해롭고 폭력적인 속성들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을 타인과 비인간동물, 대지와의 온정적이고 건강한 관계 속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래서 이 책은 엠싯 노그막(나의 모든 인연), 에투압트뭄크(두 가지 관점으로 보기), 네투쿨림크(충분히 넘치지 않게 갖기)와 같은 미그막 족의 지혜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비인간동물, 노동자, 소비자의 안녕과 환경을 고려하여 식품 시스템을 재구축하고자 애쓰는 사상가와 실천가들 28인과 인터뷰하여 이들의 생생한 경험과 높은 사상적 식견을 들려준다. 이 주옥같은 말과 글들은 특히 소외된 이들과 비인간동물처럼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존재들을 대변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그리하여 지구 위 생명체들의 미래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긴 해도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많은 공동체에서 이미 그런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육식 민주주의를 넘어 지구 민주주의, 종 민주주의로
“농축산업이 너무 강력해져서 그들은 법 위에 있다. 법을 존중하기보다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섰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육식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육식주의(Carnism)라는 용어를 창안한 사회학자 멜라니 조이의 말이다. 이 책은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완전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하는 제도라는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되짚어본다. 특히 음식에 대해, 또 더욱 민주적이고 온정적인 식품 시스템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땅과의 상호의존적 관계, 그리고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와의 상호의존적 관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미그막 장로 앨버트 마셜의 말에 따라 지구 민주주의와 종 민주주의에 주목한다.
‘지구 민주주의’는 생태학자 반다나 시바가 창안했는데 특수성과 보편성, 다양성과 공통성,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개념으로 지구가 지탱하는 모든 존재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 선주민들의 문화에서는 생명을 인간과 비인간 종 사이의 연속체, 그리고 현재와 과거, 미래 세대 간의 연속체로 이해하고 있다. ‘종 민주주의’는 선주민 생태학자인 로빈 윌 키머러의 개념으로,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식물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필수 종’의 일부로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비인간동물들에 대한 존중을 실천하는 데 지침이 된다.
이러한 민주주의 개념들은 특히 온정적인 식품 시스템의 구축과 관련하여 “땅, 비인간동물, 인간을 도구로 삼고 상품화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소모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좀 더 장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식전환이나, “기후변화의 많은 이슈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으로 고군분투할 때, 공동체는 최악의 피해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연결성과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온정적 식품 시스템에 관한 다양한 물음에 함께 고민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화두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우리에게 마련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1장에서는 선주민을 비롯한 여러 지식체계와 관점에 기대어 좀 더 진정성 있고 깊이 있는 형태의 민주주의와 책임성은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우리가 음식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특히 이 모든 내용을 ‘구조적 폭력(시스템에 존재하는 직간접의 모든 폭력)’이라는 개념과 지금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2장에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파괴라는 맥락 속에서 세계 경제 시스템의 중요한 특징인 ‘동물산업복합체’에 대해 살펴본다. 이 시스템이 자연과 토지, 비인간동물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음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전’의 선형적 개념과 식민주의를 비판하면서, 토지와 다른 동물에 대한 ‘지배’에서 벗어나 지구의 ‘커먼즈(commons)’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문화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논의한다.
3장에서는 인간과 비인간동물 모두를 위해, 동물을 식품으로 만드는 산업화된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이러한 문제가 어떻게 악화되었으며 향후 질병 발생과 보건위기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또한 동물을 산업화된 식품 생산에 이용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정의로운 전환이 지닌 저항의 의미와 가능성, 그리고 그 모습에 대해 검토한다.
4장에서는 식민-자본주의 음식이라는 틀에서 현재의 동물 집약적 식품 시스템을 살펴보고, 이것이 소비자시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분석한다. 음식을 인간의 기본권 관점에서 탐구하는데, 생산량 증가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다루고 식량 부족, 가공식품의 과잉, 불평등한 식량 분배, 식품 안전 저해와 같은 문제도 다룬다. 또한 동물의 질병이 종의 경계를 넘어 인간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과 그것이 불러올 결과에 관한 최근 논의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5장에서는 비인간동물을 산업적 규모로 상품화하는 식품 시스템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캐나다, 미국, 유럽연합 같은 여러 나라의 표준산업지침에 대해 소개한다. 이러한 이익 중심의 시스템은 개별 노동자와 소비자가 의도적으로 다른 동물에게 잔인하게 굴지 않더라도, 대개 비인간동물의 복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결정과 관행을 좀 더 수월하게 해준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촉진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큰 틀에서의 비판적 분석으로 비인간동물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6장에서는 미그막의 ‘엡투압트멈크(Eptuaptmumk)’ 또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보기’라는 개념과 그 실천 및 구현에 대해 조명하고, ‘급진 민주주의’의 개념을 구체화하면서 온정적 식품 시스템에 걸맞은 특징들을 살펴본다. 투명성 확보의 맥락에서, 그리고 사회적, 생태적 정의로움의 전제조건으로서, 지구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적 경제 개발 접근법을 옹호한다. 또한 지역에 뿌리내리며 좀 더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인식 대전환을 반영하여 인터뷰 참여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주제를 종합하여 식품 시스템 민주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도전과 기회를 조명하고 향후 작업과 연구가 필요한 분야를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