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 동안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추상적인 이상 또는 보다 나은 미래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주로 그 세계를 묘사하는 화자의 동시대로부터 머나먼 미래 세계를 그렸다고 한다면, ≪아엘리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톨스토이의 유토피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문맥 속에서 쓰이고 읽히는 텍스트다. 톨스토이가 화성을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존 사회·정치 시스템의 결점을 제시하기 위해 실제 사회 질서와 대조시키는 이상적 모델은 먼 미래가 아닌 아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 속에서 현존하는 현실과, 고리키가 말한 ‘제3의 현실’인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의 사라짐은 독자의 실제 세계와 유토피아적 미래상 사이의 긴장을 증대시키며, 기존의 정적인 유토피아 모델을 동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환상의 합리화가 주된 사건이며, 현실의 대안적 모델의 구성이 그 기능인, 그러한 환상적 플롯에 토대를 둔 작품을 ‘환상과학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엘리타≫는 일종의 환상과학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단지 ‘존재하지 않는 장소(u-topos)’뿐만 아니라 ‘좋은 장소(eu-topos)’를 의미하며, 그것의 기능이 단순히 현실의 가능한 변형들 중에서의 대안이 아닌 보다 나은 변형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엘리타≫는 또한 유토피아 작품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1920년대 당시 소비에트 문학에 있어서 유토피아는 단지 수많은 문학 장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유토피아는 ‘미래라는 이름의 전쟁’과 ‘신구의 투쟁’, ‘먼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가죽점퍼 차림의 볼셰비키’에 관한, 그 당시 모든 문학작품에 스며들어 있었다. 즉, 1920년대에 유토피아는 모든 예술과 삶 자체의 불변적 특성을 구성하고 있었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상의 유토피아를 이 지상으로 끌어내렸던 소비에트 문학은 ≪아엘리타≫를 통해 또다시 지상의 유토피아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기를 꿈꿨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