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가사≫의 이본은 모두 3종으로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부속도서관 소장 호사문고본(蓬左文庫本), 전남 해남 윤선도 종택 소장 윤씨본(尹氏本) 그리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藏書閣) 소장 장서각본(등록번호 41038705) 등이 그것들이다. 이 책은 호사문고본을 저본으로 번역한 것이다.
≪악장가사≫의 용도는 수록된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아악가사>와 <속악가사>는 궁중 제례 의식에 사용된 악장을, <가사>는 궁중 잔치용 음악 가사를 수록하고 있으므로 이 책은 궁중 제례 및 잔치용 가사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적 측면에서 보면 <아악가사>는 아악을 연주하는 제례의 가사, <속악가사>는 속악(향악)을 사용하는 제례의 가사 그리고 <가사>는 속악과 당악을 사용하는 연향의 가사로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제적(禮制的) 측면에서 보면 오례 가운데 제례를 담당하는 길례에는 <아악가사>와 <속악가사>가, 연향을 담당하는 가례에는 <가사>가 쓰이기 때문에 이 역시 편찬을 고려하는 대상이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악장가사≫는 ‘궁중의 제례와 연향에 사용된 가사집’이라는 점을 통해 볼 때, 편찬 주체는 궁중 음악 담당자 혹은 부서임을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16세기를 살았던 민간인 박준이 편찬했다는 주장이 있어 왔으나, 이 책에는 17세기의 노래가 실려 있고 노래의 용도가 궁중 전용임을 상기할 때 이와 같은 주장은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악장가사≫의 편찬 주체는 궁중 제례 및 연향과 관계된 이들이며, 구체적으로 조선 시대 궁중 음악을 총괄했던 장악원 혹은 소속 장악원 소속 관원들이라 할 수 있다.
악서(樂書)의 흐름에서 볼 때, 조선 후기 17세기 후반 장악원에서 편찬된 ≪악장가사≫의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악장가사≫ 편찬 이전의 궁중 악서가 악보(樂譜) 무보(舞譜) 위주였던 점과 달리 순수 가사 위주의 악서 출현은 악서의 흐름 가운데 큰 변화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장가사≫는 구비 전승의 국문 가사를 여러 악서의 영향을 받아 기록한 점에서 국문 가사의 기록 전통을 계승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악장가사≫는 예악서의 전문화·분화 편찬의 흐름 속에서 ≪악학궤범≫, ≪시용향악보≫, ≪양금신보≫ 등에서 보여 준 국문 가사 수록 전통을 계승해 17세기 궁중에서 편찬된 가사 위주의 최초 시용·상용 악서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전통은 ≪악학편고≫와 ≪교합가집≫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