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감 가득한 이 책은 민주주의 수호자가 해야만 할 가치 있는 행동을 제시한다.”
아이라 카츠넬슨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ㆍ정치학
“심도가 지닌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으려면 제도적 설계와 관계를 체계적으로 재구상해야 한다.”
브라이언 쿡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명예 교수ㆍ행정학
미국을 배회하는 두 유령 -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를 둘러싼 역사와 제도
‘딥 스테이트’란 튀르키예나 이집트 등에서 정치를 통제하는 군부 세력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트럼프는 의미를 확장해 행정부 안에서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비밀 네트워크로 규정한다. ‘심층 국가’로 번역하기도 한다. ‘단일 행정부’ 이론이란 대통령과 행정부가 한 몸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 조항과 선거 결과를 양손에 쥔 채 트럼프는 극단적 양극화와 파당 정치를 토양 삼아 대통령이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체제가 진짜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정당과 대통령 행정부를 초월하는 밀집된 행정 기구에 기반한 ‘딥 스테이트 음모론’과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보여 주는 ‘단일 행정부 이론’은 ‘민주적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을 매개로 연결된다. 트럼프는 이 둘을 이어 붙여 자기는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이지만 자기를 싫어하는 적들은 국가 심층에 눌러앉아 민주적 지도자를 방해하는 악이라는 수사를 완성한다. 미국 국가에 딥 스테이트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충성을 기준으로 삼은 코드 인사와 대행 임명, 대중 동원 기예를 활용해 대통령직과 행정부를 사유화한다. 결국 단일 행정부 이론과 딥 스테이트 음모론은 서로 소환하는 한 쌍이 된다.
저자들은 이런 논의를 배경으로 2부에서 단일 행정부와 딥 스테이트 사이에 벌어진 대결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5장 〈참모진의 심층〉은 공화당 기득권 세력과 포퓰리스트 반란 세력이 맞붙은 백악관 참모진을 돌아본다. 딥 스테이트는 무역 협정 초안을 훔치고 충성파가 보낸 서한을 중간에 막아선다. 6장 〈규범의 심층〉은 대통령이 내린 지시와 정부 기관이 수행하는 행동이 충돌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한 문제와 힐러리 클린턴을 기소하는 사안을 두고 연방수사국하고 충돌하는데, 트럼프가 볼 때 자기 뜻을 거스르는 이들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미국을 망치는 딥 스테이트 도당일 따름이었다. 7장 〈지식의 심층〉에서는 단일 행정부와 과학이 부딪친다. 트럼프는 정치에 상관없이 중립 지대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과학에 개입한다. 기상 예보와 환경 규제를 둘러싸고 기상청과 환경보호청을 겁박하며, 자기가 선호하는 정책에 안 맞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농무부 산하 국립식량농업연구소와 경제연구소를 워싱턴에서 캔자스시티로 쫓아낸다. 대통령이 보유한 임면권을 둘러싼 갈등은 8장 〈임명의 심층〉에서 조명한다. 트럼프는 ‘대행이 좋다’는 말까지 하면서 전문성, 경력, 독립성이 아니라 충성도를 기준으로 사법부와 정보기관을 비롯한 여러 국가 기관을 좌지우지한다. 9장 〈감독의 심층〉에서 단일 행정부는 의회를 상대로 싸운다. 의회가 주도한 탄핵 과정에서 많은 하위 공무원이 증언에 나서자 트럼프는 딥 스테이트가 마침내 실체를 드러내고 선거로 당선한 대통령을 쫓아내려 마녀사냥을 벌인다며 여론전을 펼친다.
“헌법에 집착하지 마라” - 대통령 권력의 개인화와 곤경에 빠진 공화국의 미래
저자들은 해답이 반드시 헌법에 들어 있다는 믿음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의존한 정치적 해결책이 고갈된 현실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징후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단일 행정부를 꿈꾸는 대통령의 야망과 훌륭한 통치 역량을 지닌 당사자이지만 오만해지기 쉬운 딥 스테이트 사이에 벌어진 갈등을 탁월하게 통찰하면서 곤경에 빠진 민주주의 체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라는 쌍둥이 유령은 헌정 체제의 그늘을 배회하며 모호한 헌법 속에서 서로 불러낸다. 대통령이 단일 행정부, 곧 대통령 개인이 행사하는 위계적 통제를 고집하면 행정 요원은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의회가 강제 명령을 수단 삼은 지배에 맞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을 부여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행정 요원이 위계적 통제에 저항하면, ‘최고’ 행정관인 대통령은 ‘격노’해서 선거를 거쳐 부여된 권한을 보장하고, 행정부 단일성을 제고하고, 대통령 개인에게 복종하라고 더욱 첨예하게 주장한다. 헌법 조항만으로 상황을 깔끔히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난제는 헌법 구조 자체에 뿌리박혀 있으며, 권력 분립 원리와 견제와 균형 원리 사이의 긴장 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헌법 외적인 제도 배치를 바탕으로 현실을 수용했다. 19세기에는 정당 정치를, 20세기에는 행정 영역을 거친 협치를 매개로 삼아 통치했다. 따라서 저자들은 21세기 미국인도 새로운 제도 배치를 창조적으로 구상하자고 제안한다. 권력 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을 구성하는 두 원리와 공화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방법은 헌법에 집착하는 태도하고는 무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부터 협치를 부정하고 대통령직을 개인화하는 흐름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19세기 말 정당 정치에 닥친 위기가 20세기 관리 행정을 거쳐 해결된 사례처럼 21세기에도 새로운 해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미국 역사에서 지침을 찾자면 헌법 틀 안에서 파당적 분열을 봉합하고 행정부 부처 간 협력을 증진하는 제도적 혁신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심도가 지닌 가치를 상실하지 않으려면 제도적 설계와 상호 관계를 체계적으로 재구상해야 한다는 결론은 미국 공화국을 구성하는 모든 성원이 주목할 만하다.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는 한국이 놓인 현실을 설명하는 데도 꽤 쓸 만하다. 민주적 대표를 자임하는 정치인들은 관료 집단을 공격하고 관료 집단은 자기들만 누리는 이익을 위해 납득하기 어려운 사보타주를 한다는 구도는 《두 유령》에서 다루는 사례들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도 문화도 등장인물도 확 다른 두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이유는 대통령제 민주정이 취하게 되는 기본 구도 때문이다. 구체적인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통령이 민주적 정당성과 헌법적 정당성을 개인에게 집중시키는 한, 그런 자원을 이용해 여당을 완벽히 장악하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한, 현대 국가의 심층이 민주적 위임을 제외한 여러 보조 수단을 요구하는 한, 대통령직에 적용되는 원리는 똑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