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45년 만의 계엄 선포
한국 현대사에서 계엄은 어떻게 반복되고 변형되었나
대한민국에서 1981년 이후에 태어난 청소년과 청년들은 계엄을 경험하지 못했고, 1980년 이전에 태어난 장년과 노년은 계엄에 치를 떨었다. 지난 세기에 일어났다고, 역사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하다고, 이제는 희미해져서 언제 왜 일어났는지 가물가물했던 비상계엄이 21세기 2024년 12월에 현실로 나타났다. 1987년 이후 민주적 헌정질서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에, 국가비상사태라고 인식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45년 만의 계엄령이자(1979년 10월 27일 기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17번째 계엄령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과거 독재정권의 통치 기술로 악용되었다. 이 책의 1부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에 민주주의를 잠정 중단시키는 통치 기술로 사용되었던 비상계엄의 역사를 살펴본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최초로 선포된 계엄은 이승만 정권기인 1948년 10월 22일 ‘계엄법’도 없는 상태에서 공식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도 아닌 여수·순천 사령관이 선포했다. 이후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기에도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계엄이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법률이 아니라 법 이전의 폭력을 ‘계엄법’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박정희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질서 회복’을 내세우며 계엄을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렸다. 바야흐로 32년 군사독재 정부의 서막이었다. 군사정부의 계엄 통치는 이후 모든 쿠데타의 원형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기에는 이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억누르기 위해 비상계엄과 위수령을 발령했고, 1972년 친위쿠데타와 유신체제의 길을 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유신은 대통령의 비상 권력을 제도화했으며, 계엄을 헌법 바깥이 아니라 헌법 내부로 끌어들인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통치자가 법률과 권력분립의 원칙을 깨고 비상대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던 것이다.
1979~1980년은 계엄이 지속되고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의 12·12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5·18항쟁을 국가폭력으로 억눌렀던 시기다. 신군부는 시민항쟁을 짓밟으며 계엄을 정권 장악의 도구로 썼다. 광주의 기억은 그대로 2024년 계엄을 저지하는 시민 저항으로 이어졌다.
계엄은 어떻게 가능했던 건가?
계엄의 제도적 본질, 그리고 법과 문학으로 사유하는 저항과 억압
통치권력이 법을 정지시키고 스스로를 초월하는 권능을 행사하는 상태를 일러 ‘예외상태’라고 한다. 또, 헌정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통치자가 일시적으로 법률과 권력분립의 원칙을 넘어서 행사하는 특별 권한을 ‘비상대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선포되었던 계엄은 바로 이 예외상태가 헌법과 법률에서 제도화된 구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며,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비상사태를 조성하여 국가긴급권과 비상대권을 행사하면서 독재권력을 제도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윤석열의 12·3비상계엄은 처음부터 예외상태가 아닌 것을 예외상태인 것처럼 기망함으로써 그 자체가 불법이 되었다. 이 책의 2부는 예외상태를 가능케 한 헌법과 국가권력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에서 계엄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어왔는지를 살펴본다.
대한민국은 권력자의 내란에 취약하다. 이는 대한민국헌법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또한 현행 계엄법은 일제 계엄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거의 베끼다시피 하여 제정되고 몇 차례 개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채 대한민국헌법의 규범을 소외시키고 배척하는 위헌 상태를 낳았다. 대한민국헌법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일반 국민에 대해 군사법원의 관할을 인정하고(제27조 2항), 군에 대하여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인권침해적 조항(제77조 3항)이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헌법 조문에 권력분립의 예외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을 인정하고 있어 내란 같은 국가범죄가 법의 형식 속에서 작동한다. 한국 헌정사에서 계엄제도는 헌법을 보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헌법을 파괴하는 수단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계엄선포권을 포함해 대통령을 촘촘히 통제할 수 있는 법률이 부재하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곧 법의 바깥으로서 예외상태가 이루어진 가운데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가고, 탱크를 막아세운 시민들의 저항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회복과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한 국민주권의 행사이며, 불법적 공권력에 맞서기에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다. 저항권은 법 바깥에서 법을 사유할 수 있는 실천적인 제도로서 법이다.
부정한 권력의 재편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국가폭력, 국가범죄의 계엄은 한국문학에서 그것이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진 억압된 구조였음을 말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문학에서 계엄의 기억은 계엄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록되어왔다. 반복되는 계엄 속에서 계엄이 해제되어도 계속해서 일상을 지배했고 끝나지 않는 밤으로 어둠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언론, 광장, 현장, 교실에서 여는 새로운 민주주의
윤석열의 12·3친위쿠데타, 내란은 비단 정치와 법적인 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극우 유튜버들의 알고리즘 내란, 적대와 혐오가 가득한 내란의 언어들, 학교 교실에까지 SNS으로 침투한 거짓 선동 또한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이는 비상계엄이 종료되고 윤석열이 형사재판 중인데도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의 3부는 계엄 이후의 언어와 감정, 기억과 실천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본다.
언론의 비판에 귀를 닫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든 대통령, 저널리즘 생태계의 왜곡된 구조로 인한 언론의 퇴행을 짚어본 글은 언론 개혁과 공론장 회복이 얼마나 절실하고 필요한 일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한편 12·3비상계엄 이후 거리에서 분출된 시민의 저항이 다양한 사회운동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변화를 위한 ‘균열’이 단절이 아닌 연결의 전략이자 새로운 정치 감각을 여는 출발점임을 알려준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 판결 이후 언어의 내란 정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계엄 미화 전략과 내란 부정 담론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폐해는 학생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지만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수업과 학생들과의 대화는 민주주의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