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를 안다는 건, ‘세상을 읽는 안목’을 기르는 일
“자신만의 높이로 세상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 하나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이 그러한 전망대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_역자 후기 중에서
건축은 막대한 자본과 첨예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며, 시대의 가치관과 여러 사람들의 바람이 모여 만들어진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건축사를 돌아보면 고대에는 권력을 과시하고자 거대한 신전과 궁전 등이 발달했고, 중세에는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며 신의 권위를 표현한 대성당이 주를 이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에서 벗어난 인간 중심의 사고가 건축에 반영됐고, 근대에는 산업혁명이 기술을 발전시켜 대형 구조물과 고층 빌딩이 생겨났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환경 문제 등에 대응해 지속 가능성을 아우르는 건축이 진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건축적 안목’이란 건물의 멋스러움을 단번에 꿰뚫어보는 능력만이 아니다. 사회의 흐름을 읽고 시대의 고민을 유기적으로 해석할 줄 아는 관점이다. 이렇게 안목 있는 시민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삶은 더 단단한 토대 위에서 나아갈 수 있다.
건축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에도 유의미한 이유
저자는 건축을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로 정의한다. 그는 건축사 연구에서도 기념비나 조형물보다 ‘사람이 살아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주목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는 기술적으로 경이롭지만 관을 안치하는 장소일 뿐 생활 공간이 아니기에, 그의 기준에선 건축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라도 사람들이 거주하며 의미와 용도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건축에 가깝다고 본다. 책에서 맨 처음 다루는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이다. 파라오가 추구한 종교적 목적을 중심에 두고 주변 건물들의 배치와 역할까지 세심하게 계획한 것이 특징으로,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의미를 품은 공간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어 소개되는 여러 건축물에도 각기 다른 의미와 쓰임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으니, 그 메시지들을 따라 책을 읽는다면 더욱 깊은 감흥이 남을 것이다.
시대의 질문에 계속해서 대립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꾼 건축가들
이 책에는 건축물 만큼이나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시대의 변화, 기술의 발전, 사회적 요청 앞에서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고군분투해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는 기존의 형식을 지키려 애썼고, 누군가는 과감히 깨뜨리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미학을 중시한 고전주의에 맞서 기능 위주의 모더니즘이 등장했고, 이어서 획일성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렸다. 자본주의 속 건축물이 대량 생산되자 수공예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 장식미를 되살린 아르누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설계 등이 부상했다. 이처럼 건축은 시대가 던진 질문에 늘 하나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고 여러 대립을 거쳐 진화해왔다. 그 이면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고민한 건축가들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앞으로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명확한 정답은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그 물음의 수만큼 건축의 가능성은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