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을 뻔했던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
올리버 색스와 수전 배리, 두 신경과학자의 우정과 지적 모험
★ 올리버 색스 타계 10주기, 미공개 친필 편지 수록
★ 남궁인 의사·작가, 손보미 소설가 추천
“색스의 책을 사랑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마지막 장에서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 템플 그랜딘(콜로라도주립대 교수, 동물학자)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연약한 존재들을 위해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의사이자 신경학자, 전 세계가 사랑한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된 지금 우리 앞에 도착했다. 편지의 수신인은 반평생을 사시이자 입체맹으로 살다가 마흔여덟 살에 처음 세상을 입체로 보게 된 신경생물학자 수전 배리다.
수전은 자신의 눈앞에 새롭게 펼쳐진 3차원 세계의 아름다움에 날마다 넋이 나갈 듯 매료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경험을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입체시는 유아기의 특정 시기가 지나면 결코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래서 수전은 이 기적 같은 이야기를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환자들을 연민할 뿐 아니라 공감하는 의사 올리버 색스라면, 그가 자신의 환자들에게 그랬듯 자신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 오랜 망설임 끝에 그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 한 통의 편지를 시작으로, 두 사람이 올리버가 눈을 감기 직전까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게 되리라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전이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다른 사시인과 입체맹인을 돕는 작가가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디어 올리버》는 이렇게 10년간 15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준 두 신경과학자의 서간집이자, 이제는 홀로 남겨진 이가 먼저 떠난 이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난생처음 입체시를 얻은 수전과 암으로 시력을 잃어 가는 올리버
두 사람의 생이 엇갈리는 순간의 슬픈 아이러니
“다른 사람을 알고 싶다면, 말을 건네야 한다 (…)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올리버 색스는 바로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행위의 대가였다.”
-손보미(소설가)
대부분 사람이 당연시하는 입체시를 늘 기쁨과 경이의 원천으로 여겨 온 ‘입체광’ 올리버는 수전의 편지를 받고 몹시 흥분해서 곧바로 그녀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과 이후의 교류를 바탕으로 탄생한 〈스테레오 수〉는 올리버가 써서 발표한 수전의 이야기다. 수전은 어린 시절부터 남과 다른 자신을 ‘괴물’ 같다고 느꼈고, 입체시를 얻은 뒤에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고 미쳤다고 생각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 글에 쏟아진 열렬한 반응에 자신감을 얻어 마침내 자기 이야기를 직접 책으로 쓸 결심을 하게 된다. 그 책이 바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켄델이 “한 편의 시이자 과학이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 같은 책”이라고 극찬한 《3차원의 기적》이다. 올리버와 만나고 이 책을 쓰면서 수전은 환자에서 주체로, 또 작가로 거듭났다. 또한 작가와 글감 혹은 연구자와 연구 대상으로 출발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느덧 각별한 우정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수전의 첫 편지에 올리버가 응답하며 둘의 인연이 시작된 그해 겨울, 올리버는 안구 흑색종을 진단받고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눈 뜨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익숙하던 자신의 세계를 상실해 간 것이다. 오른눈의 시력이 약화되면서 평생 올리버를 기쁘게 했던 입체시도 사라졌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양복에 묻은 얼룩을 지우려다가 그 얼룩이 거울 표면에 묻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모든 사물이 납작해지고 같은 2차원 평면에 놓여서 마치 정물화를 바라보는 듯했다. 이제 그는 수전이 과거에 살았던, 단안시로 보는 ‘납잡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올리버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의사이자 작가다운 호기심으로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결과, 서로에게 없던 감각을 후천적으로 습득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올리버의 책 《마음의 눈》에 나란히 함께 실리게 되었다.
말년에 올리버에게 닥친 불운은 시력 상실만이 아니었다. 무릎과 척추 수술을 연달아 받고 극심한 신경통에 시달려 거동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수전이 계속해서 책을 쓰도록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전은 자신이 올리버를 도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상심하면서도, 그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기어이 그를 위로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인간이 지닌 신경 가소성과 회복의 힘을 굳게 믿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지난달에 저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이된 암은 치료가 쉽지 않은데, 몇몇 처치로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늘린 몇 달이 좋은 시간이라면, 그 동안에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360쪽, 올리버 색스)
“《뉴욕타임스》에 박사님의 글이 실린 뒤 오빠에게서 다정한 이메일이 왔어요. ‘네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분을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에겐 아직 의지할 수 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오빠가 있단다.’ 박사님은 아버지처럼 제게 이름을 주셨고, 제가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제게 조언과 격려, 영감, 사랑을 보내 주셨습니다.”(363쪽, 수전 배리)
진정한 친구란 서로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올리버와 수전은 20년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하리만치 닮은 점이 많았다. 수영과 음악을 좋아하고, 동식물 관찰하기를 즐기고, 평소엔 수줍음이 많지만 관심 가는 주제에는 집요하리만치 열정적으로 파고들며, 말로 할 때보다 글로 쓸 때 더 생각이 잘 풀렸다. 이들에게 편지는 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영감을 발전시키는 글쓰기의 필수 요소였다. 무엇보다 이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필담은 자연스레 과학과 의학에서 취미와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넘나들며 펼쳐지는데, 그 중심에는 감각과 지각, 인식의 다양성이 있다. 이들의 시야는 눈으로는 장갑을 알아보지 못해도 장갑을 손에 낄 수는 있었던 P 박사,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바흐를 안다는 사실은 잊었어도 바흐의 푸가를 연주할 수는 있었던 음악가, 앞을 보지 못하지만 촉각을 통해 연체동물의 기하학적 구조를 파악한 진화학자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한 사람들,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에까지 확장된다. 과연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감각하는 것, 행동으로 아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과학자의 언어와 생생한 삶의 언어를 모두 동원해 탐구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경이로운 선물이자 축복임을 깨닫게 한다.
나이가 지긋한 두 학자가 사소한 것에도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놀라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좋은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우리의 감각, 감정, 사고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투병 중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지적 항해를 계속하는 색스 박사와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는 위로를 보내는 수”(남궁인 의사, 작가)의 우정어린 편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 삶을 향해 열린 태도에 스며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