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이로움 혹은 예술적 성취의 증거이자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표지
기념품의 역사는 사천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유행하는 기념품은 달라졌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언제나 기념품에 진심이었다. 여행이 드문 경험이었던 과거에는 이러한 경향이 한층 더 심했다. 당시에는 여행 기념품이 자신의 특별한 경험뿐 아니라 부와 특권을 과시할 수 있는 증거였다. 보편적인 여행의 형태가 주로 성스러운 땅으로 떠나는 여정이던 중세 시대를 지나 계몽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예술, 과학, 인문주의적 탐구가 여행의 중심 테마가 되었다. 그에 따라 기념품도 성유물과 신성이 깃든 물건들, 신의 창조물이라 할 수 있을 자연물 중심에서 인문주의적 탐구와 예술에 도움이 될 만한 표본들로 옮겨갔다. 19세기 말이 되자 양산형 장식품이나 대량 판매용 소품이 인기를 끌었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기념품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말, 양산형 기념품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한다.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일상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곧 휘발되어버릴지 모를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기념품을 구입한다.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가져오는 물건들은 얼핏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의 우주를 품은 고유한 사물이나 다름없다.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 속 마들렌처럼, 여행지에서의 기억과 감정을 한순간에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뿐일까. 지도 위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감각하고 앞으로 펼쳐질 여행을 꿈꾸게 하는 신비한 물건이기도 하다.
내가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치며 모은 기념품들은 그 자체로 무작위적인 박물관을 이루어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 존재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방식을 전시한다고 할 수 있다. _89쪽
지극히 사적이면서 보편적인 기념품의 흥미진진한 모험
『기념품』을 쓴 롤프 포츠는 끊임없이 자기만의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여행을 시도하는 여행 작가다. 짐 없이 육 주간 세계를 여행하고 히치하이킹으로만 동유럽을 유람하거나 걸어서 이스라엘을 횡단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면서 칠십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그가 자신이 모아온 기념품 컬렉션을 소개하며(그중에는 한국에서 사 간 기념품도 있다!) 풀어내는 기념품의 역사와 발자취는 그야말로 또하나의 기발한 모험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념품뿐만 아니라 범죄 현장이나 재난 현장에서 오랜 시간 기념품으로 취급되어온 것들, 어느 나라의 전통적인 물건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특정한 전통이나 문화를 그저 ‘수행’하고 있을 뿐인 기념품들 등 기념품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이 여행지에서 사 온 물건들이 전과는 조금 달라 보일 것이다.
각각의 기념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나의 핵심적인 자아 감각과 긴밀하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_16쪽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이 품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리즈, 복복서가 ‘지식산문 O’]
복복서가 ‘지식산문 O’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사고를 촉발하는 책들을 선별해 국내 독자에게 선보이는 시리즈다. 사물에 관한 깊이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문 에세이로, 독자는 이 시리즈를 통해 늘 곁에 있는 물건들,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탐험하며 교양을 쌓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