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詞)는 대중가요의 가사로 쓰일 것을 전제로 지은 서정시의 일종으로, 점잖은 사대부들이 이별의 아쉬움, 나그네의 설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인생무상의 감회는 물론, 시로는 토로하기 어려운 이성애(異性愛)까지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문학 양식이었다. 근엄하고 반듯한 대인군자들이 사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위엄을 잠시 내려놓고 숨김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사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국 특유의 문학 양식이다. 그러나 중국 고전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중국 문학을 흔히 ‘당시(唐詩)·송사(宋詞)·원곡(元曲)’이라는 말로 개괄한다. 이는 당나라 때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은 시이고,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은 사이며, 원나라 때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은 곡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사는 송나라 때에 전성기를 맞이한, 송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양식이다.
당규장(唐圭璋, 1901∼1990)이 송나라 때의 사 작품을 망라해 편찬한 ≪전송사(全宋詞)≫에 1330여 명의 사 약 2만 수가 수록되어 있고, 그 뒤 공범례(孔凡禮, 1923∼2010)가 누락된 부분을 보충해 편찬한 ≪전송사보집(全宋詞補輯)≫에 140여 명의 사 약 430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방대한 작품을 두루 다 읽기는 매우 불편하고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청나라 사람 주조모(朱祖謀, 1857∼1931)가 이 가운데 300수를 선정해 ≪송사삼백수(宋詞三百首)≫를 편찬했다. 주조모는 주방언의 사를 본보기로 삼는 상주사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그가 편찬한 ≪송사삼백수≫는 호방사를 경시하고 완약사를 중시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송나라 문인들의 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대표적인 송사 선집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읽어야 할 책이 수없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송사삼백수≫조차도 다 읽기가 버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그중에서도 인구에 특히 많이 회자하는 정수 중의 정수 53수를 가려 뽑아서 ≪송사삼백수 천줄읽기≫를 편찬했다. 이 작은 선집이 독자들이 한결 쉽고 흥미롭게 송사에 다가가는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