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시대 현종실록자본 ≪세설신어보≫(연세대학교 소장)를 저본으로 해 번역한 위의 ≪세설신어보≫ 완역본 중에서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고사 575조 가운데 321조를 수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세설신어보≫의 선역(選譯)이면서 ≪하씨어림≫의 선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설신어≫와 그의 속서 ≪하씨어림≫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라의 문인 유의경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는 후한 말에서 동진 말까지 실존했던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의 독특한 언행과 일화를 수록해 놓은 필기소설집이다. 당시의 문학·예술·정치·학술·사상·역사·사회상·인생관 등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면모를 담고 있어, 중국 중고시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하다. 그 결과 후대의 여러 작가들이 본받는 지표가 되어 당나라 때부터 민국 초까지 역대로 속서들이 많이 지어짐으로써, 중국 지인소설사상 이른바 ‘세설체 문학’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명대 하양준의 ≪하씨어림(何氏語林)≫은 ≪세설신어≫의 주요 속서 가운데 하나다. 체재는 ≪세설신어≫를 답습하되 <언지(言志)>와 <박식(博識)> 두 편을 추가했다. 그 시대 범위는 양한대부터 송·원대까지며, ≪세설신어≫에 수록된 고사는 제외되어 있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劉孝標) 주를 모방해서 각 조 밑에 다른 책의 기록을 인용해 주를 달아 해당 인물의 생평과 그와 관련된 고사를 소개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각 편 앞에는 소서(小序)를 두어 편목의 함의와 편집 의도 등을 밝혀 놓았으며, 일부 고사의 뒤에는 자신의 논단(論斷)을 끼워 넣어 찬자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세설신어보≫는 명대 왕세정이 유의경의 ≪세설신어≫와 하양준의 ≪하씨어림≫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삭제해 합쳐 놓은 형태로 산정했다. 처음에는 산정된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이 합각(合刻)한 형태로 있다가 나중에는 두 책이 혼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세설신어보≫의 판본은 20권본과 4권본이 있는데, 20권본이 먼저 간행되고 4권본이 나중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권본은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을 산정해 조합해 놓은 것으로 별행본(別行本)으로 간행되었으며, 4권본은 거의 대부분이 ≪세설신어≫와 합각한 형태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세설신어≫의 고사를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산정한 ≪하씨어림≫의 고사만을 수록해 놓았다.
≪세설신어보≫의 편목은 ≪하씨어림≫에서 추가된 <언지>와 <박식> 두 편이 다시 삭제되고 ≪세설신어≫의 본래 편목에 따라 36편으로 되어 있다. 각 편에 수록된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시대 범위는 양한에서 원대까지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 주와 ≪하씨어림≫의 하양준 주 역시 약간의 산정을 거쳐 그대로 활용했다. 따라서 ≪세설신어보≫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가 한·위·진대에서 송·원대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1500년간에 실존했던 700여 명의 인물 정보와 역사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명대는 ‘세설체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세설신어≫의 속서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세설신어≫ 정신의 통시적 구현을 의도로 편찬된 ≪세설신어보≫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온 시기는 조선 선조(宣祖) 39년(1606)이고 ≪세설신어보≫는 명 가정 35년(1556)에 처음 간행되었으므로, 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국내에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설≫에 대한 국내 문인 학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았음을 말해 준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세설≫의 중국 판본이 집중적으로 수입되었는데, ≪세설신어보≫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20권본과 4권본이 고루 수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직접 ≪세설신어보≫를 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