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녹스’와 구인류 ‘큐리오’
둘로 갈라진 인류의 이상과 현실
나가노 8구. 어느날 이 마을에서 녹스 살해사건이 벌어진다. 사건 발생 후 나가노 8구는 녹스 자치구로부터 강제로 경제봉쇄를 당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20명 남짓이다. 10년 동안 이어진 따돌림과도 같은 봉쇄조치가 끝이 나자, 이곳에서는 다시 녹스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녹스로 태어난 모리시게와 녹스를 갈망하는 구인류 데쓰히코. 둘은 전혀 다른 상대를 서로 선망하면서도 우정을 쌓아간다 .
한편 구인류였지만 지금은 녹스가 된 레이코는 구인류 시절 낳았던 딸 유를 찾아 나서는데...
“밤의 인간이 될지 말지, 난 아직 못 정했어요”
10년 만에 봉쇄가 풀린 나가노 8구. 그곳에 사는 구인류인 큐리오는 1년에 한 번 서른이 안 된 사람 중 단 1%만 추첨을 통해 녹스가 될 권리를 얻게 된다. 백신을 맞고 항체를 얻어 밤의 인간 녹스가 되는 것이다. 유의 아버지 소이치는 딸 유가 녹스가 되기를 희망하고 추첨제도에 신청한다. 마침내 당첨되어 녹스가 될 자격을 얻은 유는 계속 갈등하지만 끝내 백신을 맞고 녹스가 된다.
“개운하다 그래야 하나? 그동안 고민했던 게 웃겨요.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몸도 머리도. 10년 동안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어요. 나 이제 공부도 하고, 우리 마을 같은 곳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뭔가 해보려고요. 여태 너무 시간 낭비만 하고 산 거 같아요.” - 본문에서
한편 수십 년 만에 만난 같은 고향 사람인 구인류 소이치와 신인류 가네다.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가네다는 세월이 흘러 초라하게 늙어 있는 소이치를 불쌍히 여긴다. 하지만 결국 가네다는 태양을 등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이치 곁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태양〉은 이상과 현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중 신인류인 녹스는 인간이 꿈꾸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반면 구인류 큐리오는 의욕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원안 단계에서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녹스와 큐리오의 혼혈이 등장해 희망이 되어주는 결말이었는데, 2011년에는 그런 결론이 너무 낙관적이게 느껴졌습니다. 그 해, 일본은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크게 흔들렸고, 정치와 사회의 문제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리셋 버튼을 누를 수도 없고, 하룻밤에 녹스로 변신할 수도 없습니다. 현실은 가혹하고, 쉽게 해결될 리 없습니다.”
_ 마에카와 도모히로 인터뷰 〈태양〉 한국 초연을 기다리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