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살아남았고, 더 많은 삶을 갈망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루돌프 브르바의 성장 배경, 2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시간, 3~4부는 수용소를 탈출한 이후 「브르바-베츨러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치의 가공할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 5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르바의 삶을 다룬다. 크게 보면 루돌프 브르바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탈출 이전까지 그의 이름은 ‘발터 로젠베르크’였다).
1924년 슬로바키아 토폴차니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루돌프 브르바는 열일곱 살 때인 1942년에 당시 나치에 협력하고 있던 요제프 티소 정권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 따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로 추방되었다. 그는 날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 가는 수용소의 참상을 목도하면서도 좌절하고 포기하는 대신 오직 탈출만을 생각했다. 마침내 열아홉 살 때인 1944년 4월 7일, 그는 수용소 내 시체 안치소에서 일하고 있던 알프레드 베츨러와 함께 탈출에 감행하여 성공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으로 향해 가는 열차에 올라타는 유대인들의 추가적인 행렬을 막기 위해 그동안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브르바-베츨러 보고서」다. 브르바는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특축했던 기억력과 암기력을 바탕으로 습득한 나치의 죽음 시스템의 실상과 수용자들의 삶을 낱낱이 보고서에 담았다. 그의 보고서는 화려한 수사 없이 간결하고 건조하며, 감정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다. 탈출 이후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던 그들에게 보고서 작성은 사실상 목숨을 건 과업이었다. 그러기에 보고서가 알맞은 사람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고서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의 여정을 시작했고, 그 결과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확인한 연합국 측의 무능함과 유대인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에 그는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만 하면 더 이상의 학살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사람들은 보고서의 내용을 접하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공포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경고를 믿고 싶어 하지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수용소에 있을 때도 인간의 살이 타는 연기로 가득 찬 공기를 마시면서도 진실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은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르바는 이 모든 사실을 이해했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전쟁 이후 그는 체코 프라하, 이스라엘, 영국 런던,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 다니며 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전범의 신원 확인과 증언을 했다. 늘 삶을 사랑했고, 더 많은 삶을 갈망했던 그는 2006년 3월 27일 캐나다에서 사망했다.
“루돌프 브르바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탈출의 마술사 중 하나였다.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함으로써 이전에 어떤 유대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고 그가 본 것을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비록 아우슈비츠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공학자이자 과학자였고 남편이자 아빠였으며 결국에는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브르바는 세상과 역사에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브르바 덕분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기나긴 삶을 살았고 그들의 자녀, 손자, 증손자가 세상에 나왔다. 도저히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 말이다.”(4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