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웨인의 평생에 걸친 체제 불신이 본격적으로 분출된 첫 작품이다.”
루이스 J. 버드(미국문학 연구자, 듀크대 명예교수)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훌륭하며, 동시대 미국 사회를 이처럼 예리하게 풍자한 소설은 전례가 드물다.”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칸」 1873년 서평
★“『도금시대』는 한 시대의 이름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그 타락한 시기를 동시대에 정면으로 비판한 드문 작품으로 남았다.”
버나드 드보토(퓰리처 수상 평론가)
산업화와 탐욕의 실험실
도금으로 덧칠한 공화국의 자화상
『도금시대』가 밝힌 번영의 역설
남북전쟁 직후, 테네시 산맥의 7만 5천 에이커 땅을 들고 워싱턴에 입성한 호킨스 일가는 공공대학 설립 법안에 자기 땅을 끼워 넣으면 금세 값이 수천 배로 뛸 것이라 확신한다. 상원의원 딜워시는 서류에만 당을 올리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달콤한 말로 그들을 부추기고, 셀러스 대령은 지도 위에 선을 긋는 것만으로 미시시피부터 애팔래치아까지 이어지는 가상 철도를 만들어 낸다. 정치를 땅 값의 상승에 이용하는 호킨스 일가, 토지 증서만 있으면 언제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셀러스의 허풍, 그리고 법안 표결을 앞두고 의원 접견실을 드나드는 로비스트들의 거래가 맞물리면서, 국가 보조금과 의회의 표결은 하나 둘 사사로이 배분된다.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이어붙여, 공적 자원이 공익을 위한 개척이란 명분 아래 어떻게 사유화되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도금된 이상을 꿈꾸었던 자들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적나라하게 그려 낸다.
트웨인과 워너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말의 힘이다. 서부의 젖줄이라 칭송하는 신문 사설, 하늘이 열린 기회라며 투자자를 꾀는 팸플릿, 개척정신이야말로 애국이라 외치는 의회 연설이 서로를 반사하며 하나의 거대한 합창을 이룰 때, 공화국적 이상은 순식간에 사적 이윤으로 치환된다. 언어가 뒤엉켜 제도 자체를 다시 짜는 메커니즘, 오늘날 개발 특구나 정책 금융으로 불리는 공식을, 이미 19세기 한복판에서 정밀하게 포착해 낸다. 금빛 언어가 얇게 입혀진 그 껍질을 살짝만 긁어도, 그 아래에는 값이 매겨진 땅과 표, 그리고 투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욕망과 이상이 맞서는 현장
제도적 모순을 드러내는 서사 실험
거품, 붕괴, 재편의 순환 구조를 해부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합법과 공익이라는 갑옷을 두른다. 호킨스 가문은 토지법을 악용해 서류상 면적을 부풀리고, 상원의원 딜워시는 유령 회사를 앞세워 보조금 항목을 예산안에 끼워 넣는다. 이들은 부패를 저지르면서도 법을 어기지 않는다. 법 자체가 이미 욕망의 시녀로 변질돼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입법, 행정, 사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도란 무엇으로 구성되며, 누가 손댈 때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지는가를 극적 긴장 속에 보여 준다.
워너의 실제 언론 경험이 묻어나는 신문 지면 묘사, 트웨인의 무대 경험이 녹아든 대사 운용은 독자에게 ‘현장감’보다 더 선명한 현존(現存)감을 준다.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가 말한 권력 엘리트의 삼각 구조, 정치·군사·경제가 소설 속에서는 정치, 언론, 투기 삼각으로 변주돼, 한 시점에 집중된 결정권이 어떻게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1873년 공황을 묘사할 때, 두 작가는 경제 위기 자체를 서사 파열로 번역한다. 거품이 터질 때 서사 구조도 함께 붕괴하는 이 장치는, 경제가 곧 그러한 문학적 심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50년이 지나도 남는 거울
새 번역, 주석으로 복원한 시대의 현장
신(新)도금시대의 독자에게 보내는 경고와 제언
경제학자 토머스 피케티가 21세기 불평등 곡선을 설명하며 제2의 도금시대라는 말을 꺼냈듯, 이 작품이 제시한 질문은 아직 닳지 않았다. 이른바 ‘신(新)도금시대’는 형식만 세련될 뿐 본질은 과거와 닮아 있다. 19세기 말, 토지 투기와 철도 채권이 불러온 거품은 ‘공익’과 ‘진보’라는 수사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팽창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구호가 반복되고, 시민은 다시금 눈부신 숫자와 화려한 청사진에 매혹된다. 형태가 조금 달라졌을 뿐, 권력과 자본이 손을 맞잡아 공동체의 자원을 사사로이 전용하는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도금시대』가 남긴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나라를 살리고 지역을 일으키겠다는 말을 앞세우지만, 결국 그 구호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이익을 가리는 얇은 금박에 지나지 않았다. 호킨스 일가는 땅문서 한 장에 모든 꿈을 걸고, 의회 의원들은 보조금 항목 하나에 국고를 저당 잡힌다. 이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본래의 취지를 잃고, 공동체가 길러 온 가치와 관계, 신뢰는 천천히 부식된다.
작품이 보여 주는 투기의 언어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개발, 투자, 기회 같은 단어가 쏟아질 때, 우리는 그 이면에서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충분히 묻고 있는가. 150년 전 트웨인과 워너가 제기한 의문은 본질적으로 이렇다. “금박이 벗겨진 뒤, 우리 곁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만약 남은 것이 공동체보다 사적 재산의 증가만을 기리는 기록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금박을 덧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균열이 드러난 자리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공익의 언어를 다시 본래 자리로 돌려세운다면, 금박 뒤에 숨은 민낯도 새로운 가능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도금시대』는 과거의 풍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선택을 가늠하는 거울이다. 금빛 외피를 걷어낸 자리에서 어떤 사회를 다시 설계할지는 여전히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