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1만 일의 기록”
현실정책 - 관계에서 변화까지, 정부의 심장부를 기록하다
정책은 어디서 오는가. 책상 위 보고서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사건과 사람, 그리고 시대의 요구 속에서 태어나는 것일까. 30년간 대한민국 행정 최전선에서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아온 한 사람이 있다.
고기동, 1971년 대구 출생. 행정고시 38회 합격 이후 행정안전부, 대통령비서실, 중앙인사위원회, 교육부,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에 이르기까지, 그는 국가의 심장부에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경험했다. 『현실정책』은 그가 1만 일의 공직 생활 끝에 꺼내놓은 생생한 기록이다.
이 책은 정책학 이론과 현장의 리얼리티를 오가는 ‘정책의 지도’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보고서는 얼마나 바뀌어야 변화된 것처럼 보일까?”, “기획재정부는 정말 슈퍼 갑일까?”, “합리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정부는 왜 쉽게 바뀌지 않을까?” 공직 현장에서 끊임없이 부딪힌 질문들. 저자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정책의 다섯 얼굴(관계·정치·선택·변화·정부)로 나누어서 분석한다.
사람과 사건이 만든 정책의 현장
책 속에는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았던 장면들이 살아 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국회 현안질의에서 266번이나 반복된 ‘책임’이라는 단어. 같은 단어가 자리와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를 띠는지, 그는 그 언어의 결을 짚어낸다. 2025년 포천 민가 폭격 사고에서는 ‘책임감의 무게’가 실제 생명과 안전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묻는다.
2023년 여름, 폭우·폭염·잼버리 파행·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까지, 사건은 하루가 다르게 발생했다. 국민의 관심은 곧 정책의 관심이자 의제다. 관심이 사라지면 아무리 절박한 문제도 해결의 문턱에 오르지 못한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관심은 희소한 공공자원”이라 부른다.
정치와 정책이 얽히는 순간들
코로나19 시기 긴급재난지원금 논쟁은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보여준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경쟁을 벌이고, 기획재정부와의 갈등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이 만들어졌다. 그는 이런 과정을 ‘정책의 정치적 순간’으로 말한다. 공공요금 인상 사례도 그렇다. 국제 가스 가격 급등에도 선거 전까지 요금 인상을 미룬 결정, 그 결과 불어난 적자와 새 정부의 부담. 그는 이를 통해 정책의 타이밍, 정치적 계산, 그리고 장기적 파급 효과의 얽힘을 보여준다.
이론과 태도, 그리고 통찰
『현실정책』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다. 퍼지셋 방법론과 텍스트 분석을 활용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행정학 이론이 어떻게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에 기여하는지 증명한다.
책 말미에서 그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수단을 알아도, 그것을 쓰는 사람의 태도가 정책의 성패를 가른다. 겸손함, 열린 질문, 깊은 사색, 그리고 “그럼에도 해보자”는 용기.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책가가 지녀야 할 진짜 실력이라고 말한다.
왜 지금, 왜 한국 독자가 읽어야 하는가
『현실정책』은 단지 공직자나 정책학도를 위한 책이 아니다.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고, 왜 어떤 정책은 성공하고 어떤 정책은 실패하는지 이해하려는 모든 시민을 위한 책이다. 정책은 멀리 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재난지원금 지급일, 전기·가스 요금 고지서, 지하차도 침수 사고처럼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작동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바라는 정부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대답할 수 있는 언어와 사례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