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조사들이 보인 불퇴전(不退轉)의
구법(求法)과 전법(傳法)의 여정!
석존에서 혜능까지 33조사와
지선, 처적, 무상, 무주로 이어지는 전등의 역사!
그 기록 속에 담긴 선법의 요의!
현 해인총림 10대 방장이자, 한국불교의 큰 스승으로 손꼽히는 학산 대원 대종사의 새 강설서가 출간되었다. 지난 2023년 출간된 《조주록 강설》(전 2권) 이후 선보이는 이번 신간은 바로 《역대법보기 강설》이다.
《역대법보기(曆代法寶記)》. 20세기 초 돈황석굴에서 사본이 출토되어 현재는 영국박물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문헌은 당나라 대력 연간(766~799)에 편찬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토록 오래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교 신자들에겐 생소하다. 《역대법보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역대(歷代)」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대대(代代)로 이어진 전등(傳燈)의 역사를 뜻하며, 「법보기(法寶記)」는 여러 조사에서 무주(無住) 선사에 이르는 법맥과 선법을 기록한 데서 유래하였다. _ 본문 중에서
그렇다. 《역대법보기》는 역대 조사들의 법맥과 전법 일화, 그 안에 담긴 선법(禪法)의 요의(了義)가 기록되어 있다. 《역대법보기》의 이칭(異稱)인 ‘사자혈맥전(師資血脈傳)’, ‘최상승돈오법문(最上乘頓悟法門)’ 등이 의미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역대 조사들의 전법에 관한 문헌이라면 《전등록》, 《조당집》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왜 《역대법보기》를 강설한 것일까?’
선(禪)의 잊힌 지도를 찾아서
《역대법보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등사(傳燈史) 문헌인 《조당집》(952), 《전등록》(송대)보다 앞선 시대에 편찬된 문헌이다. 간결한 전기 형식을 띠고 있어 조사들의 구법과 전법의 여정을 짧고 명료하게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깨달음의 본질을 중심으로 스승과 제자의 직전(直傳) 구조를 강조하며, 선종 초기의 생동하는 수행 풍토를 엿볼 수 있다.
《역대법보기》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선종의 여명기에 당나라 불교계에 진출한 신라 승려 정중 무상(淨衆無相) 선사의 위상이 조명되었다는 점이다.
무상 선사는 중국 사천성 정중사(淨衆寺)를 중심으로 선풍을 날린 고승(高僧)으로서 선종사의 중요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신라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선종의 정통 계보 밖에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대법보기》의 전승에 따르면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의발(衣鉢)이 측천무후를 거쳐 지선(智詵)-처적(處寂)-무상(無相) 이후 무주(無住) 선사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대법보기》는 혜능 이후, 남악 회양(南嶽懷讓)-마조 도일(馬祖道一)로 이어지는 계통과는 다른 독자적인 법맥을 보여주며, 선맥(禪脈)의 다양성과 깊이를 새롭게 조명한다.
《역대법보기》를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선(禪)의 잊힌 지도’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상ㆍ무주 선사가 설하고, 한국불교의 큰 스승이 전하는 가르침의 핵심
《역대법보기》에는 무상ㆍ무주 선사가 설한 가르침의 핵심이 담겨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삼구설법(三句設法)’이다.
삼구설법, 즉 삼구어(三句語)의 가르침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세 단계의 수행 관문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① 무억(無憶), 과거의 습기(習氣)를 끊고, ② 무념(無念), 지금 이 순간의 망념을 거두며, ③ 막망(莫妄), 분별 이전의 순수한 자성(自性)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역대법보기 강설》에서는 이 삼구설법을 ‘대승의 요의를 밝히는 지침’이자, 달마 대사로부터 이어진 ‘돈오(頓悟) 선법의 정수’라 일컫는다.
무념(無念)이란 곧 중생의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간화선의 화두 타파도 또한 중생의 망념이 타파된 경계이다. _ 본문 중에서
학산 대원 대종사는 이 한 마디를 통해 《역대법보기》가 간화선 이전, 선종 초기의 수행 풍토를 간직함과 동시에, 무상ㆍ무주 선사의 삼구설법은 간화선 수행의 궁극과 본질적으로 통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불기(佛紀)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아서 알 수가 없는데 지금에 와서 연대가 2500년이면 어떻고, 3000년이면 어떤가? 연대가 필요한 게 아니고 거기에 나오는 부처님 진리의 말씀이 중요한 거다. 그 진리의 말씀을 믿고 현실에서 거기에 자신이 부합되는지가 중요하다. _ 본문 중에서
불기가 2500년이든, 3000년이든 중요한 게 아니다. 나아가 전등사와 관련한 문헌이 비록 법맥과 정통성에 직결되지만, 스님의 말처럼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부처님 진리의 말씀’을 따라 구법의 길을 걸어 온 역대 조사들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정법(正法)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 아래 정진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삼구설법의 가르침을 비롯해, 부처님부터 역대 조사로 이어진 정법의 원류를 이 시대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의 계승자인 학산 대원 대종사의 법음(法音)으로 전하는 귀한 가르침이다.
《역대법보기 강설》의 특징
이 책은 지난 2022년 6월부터 2024년 6월까지 2년여의 긴 시간 동안 진행된 학산 대원 대종사의 《역대법보기》 강설 법회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리하여 스님의 강설 내용은 구어(口語)를 최대한 살려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고자 하였다.
또한 《역대법보기》 전문을 싣고, 우리말로 번역하여 독자들이 원문을 온전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필요한 경우 주석을 달아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서역 조사들의 계보만을 밝힌 《역대법보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덕전등록》 중 1조 마하가섭부터 29조 혜가까지 부분을 실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사자상승의 상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