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이야기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모험과 생존, 그리고 문명의 본질에 대한 고전적인 성찰을 담은 소설로, 영문학에서 근대 소설의 출발점이자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모험을 추구하는 젊은이로, 아버지의 만류에도 모험을 향한 열망으로 결국 항해에 나선다. 크루소는 첫 항해에서 포로가 돼 북아프리카에 잡혀가지만, 탈출 후 포르투갈 선장 덕분에 브라질에 정착해 플랜테이션을 운영한다. 이후 아프리카로 노예 운반 항해 길에 나섰다가 폭풍을 만나 난파당하고,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
극한의 고립과 절망 속에서 크루소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시작한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도구와 식량, 그리고 성실한 노동과 기지를 통해 점차 자신만의 자급자족 왕국을 만들어간다. 그는 동굴을 파고 울타리를 세워 오두막을 짓고, 밀과 보리를 재배해 빵을 만든다. 염소를 길들여 고기와 젖을 얻고, 도자기를 빚는 등 점점 더 복잡한 생산 활동을 통해 문명적 삶을 복원해간다.
한편 고립된 섬에서 영위하는 삶은 크루소에게 종교적, 도덕적 각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신을 멀리했던 그가 극한의 고립 속에서 점차 내면의 성찰에 몰두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개하고 신앙적 체험을 한다. 어느 날 무인도에 표류해온 영국 배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선장을 구출해 28년 만에 영국으로 되돌아가게 되기 전까지, 섬에서 보낸 28년 동안 그는 자연과 인간, 문명과 야만,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새롭게 경험하고 구성해간다.
특히 식인종과의 싸움, 원주민 청년 ‘프라이데이’를 만난 이후의 이야기는 제국주의적 세계관과 인종주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독해할 여지를 제공한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친구로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그를 자기 하인처럼 대하며, 서구 중심의 계몽된 인간상이 어떻게 타자를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디포는 실제 표류자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소설을 구상했으며, 실용적 지식과 사실적인 문체, 자기 성찰적 서술을 통해 이야기의 생생함과 설득력을 더했다. 따라서 《로빈슨 크루소》는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과 문명의 조건, 신앙과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내포한 작품으로, 문학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고전이다.
모험과 풍자, 현실과 상상을 넘나든
영국 근대 문학의 개척자, 대니얼 디포의 역작
대니얼 디포는 1660년 영국 런던에서 청교도 계열의 비국교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성은 뒤포(Dufoe)였으나, 후에 디포(Defoe)로 성을 바꾸었다. 상공업을 기반으로 한 중산층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 상인, 해운업자, 투자자로 활동했지만 잦은 사업 실패와 빚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곳곳에 반영되었다.
디포는 청교도 교육을 받았고,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비국교도 계층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정통 국교도 중심의 지배 질서에 비판적 시선을 가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네덜란드계 국왕 윌리엄 3세를 지지하며 정치평론가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왕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해 세무 관리직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반어와 풍자를 섞어 쓴 《비국교도를 없애는 지름길》이라는 글이 지나치게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벌금과 금고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감옥을 오가면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고, 이후 1704년부터 1713년까지 주간지 《리뷰》를 발간하며 정치, 경제, 국제 문제를 논하는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1719년, 59세의 나이에 발표한 《로빈슨 크루소》는 그의 인생을 바꾼 대표작이 되었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픽션이라는 형식을 취해,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무인도에서 28년간 고립되어 살아남은 한 남자의 생존과 신앙, 문명 회복의 과정을 그린 이 이야기는 당시 영국 사회의 식민지 개척 열풍과 개인주의적 가치관, 종교적 회심 서사에 완벽히 부합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중쇄를 거듭하는 인기에 힘입어 그해 8월 속편과 이듬해 후속편까지 연이어 출간되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성공 이후 디포는 전업 작가로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1722년 출간된 《몰 플랜더스》는 도둑, 창녀, 죄수로 살아간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며 18세기 여성의 생존과 계급 현실을 사실적으로 조명한다. 같은 해 발표된 《페스트가 돌던 해의 일기》는 1665년 런던에 창궐한 흑사병을 가상의 화자를 통해 기록한 ‘사실적 허구’로, 오늘날에는 역사 소설과 르포르타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모험이라는 날실과 신앙이라는 씨실이 맞물리며 직조된
생존과 구원의 서사, 그 이면에 드리운 제국주의의 그림자
《로빈슨 크루소》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이라는 원제가 시사하듯 인간의 삶과 기이하고 놀라운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1719년 출간된 이 작품은 ‘영국 근대 소설의 시작’이라 불릴 정도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또한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근대 개인주의, 종교적 신념, 제국주의의 은유까지 내포한 다층적인 서사로 높이 평가받는다. 독자들은 무인도에서 무려 28년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서 극한의 긴장과 고독, 생존의 쾌감, 귀환의 안도감을 느끼며 때로는 문명과 자연,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린다.
이 작품은 초·중학생 시절 그림책이나 축약본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작은 단순한 모험 서사를 훨씬 뛰어넘는다. 사회학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재확인하고,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인간이 원시 상태에서 농경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식주’의 우선순위가 ‘의(옷)-식(음식)-주(거처)’가 아니라 ‘식-주-의’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극한 고립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공포와 고독, 자아 유지의 본질에 주목하며, 종교학자들은 이 작품이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라는 통찰을 드러낸다고 여길 것이다.
이 작품의 번역자인 이덕형 선생은 ‘작품 해설’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닌 ‘신앙 고백서’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크루소는 고난의 연속 속에서 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신에게 귀의하며, 신앙을 통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그는 단지 자신이 신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신의 뜻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가며, 종교적 회심과 내적 성장이라는 또 다른 ‘여정’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고난과 구원의 서사로만 읽히지 않는다. 18세기 영국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세계관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타자의 복속이라는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로빈슨이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원주민과의 관계는 서구인의 시선에서 타자를 길들이고 문명화하는 일종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프라이데이는 말과 신앙, 가치관을 모두 로빈슨에게서 배우며 그의 ‘하인’이자 ‘개종자’가 되는데, 이는 제국주의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로빈슨 크루소》는 인간 정신의 승리와 신앙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동시에, 식민지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현대 독자들은 이 고전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자립과 신념의 감동을,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의 권력 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게 된다. 이러한 다층적 독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기나 성장기가 아니라 시대를 넘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