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길어내
생의 숙명적인 비극을 포착하다!
러시아 최고의 단편 작가 체호프 단편선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체호프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 정서는 ‘웃음 섞인 애수’라 할 수 있다. 그는 재치 있는 작품을 주로 쓴 신인 시절에는 평단에서 “종달새같이 노래 부르는 체호프”라 평가받았으며, 이후 좀 더 진지하게 세계를 대면한 후에는 “이런 작품을 내 생애에 읽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원숙해졌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에서는 체호프의 다채로운 면모를 고루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해 실었다.
익살과 해학에서 깊이 있는 애수, 페시미즘까지
당대의 모순을 포착하는 체호프만의 독보적 시선!
수록작 중 〈복수자〉, 〈함정〉, 〈사모님〉 등의 작품은 체호프의 초기 작품으로, 당시 유머 작품의 관습에 따라 도시의 소시민층에 속하는 인물을 경쾌한 필치로 희화화하여 예민하면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기지를 선보인다. 한편 〈아뉴타〉, 〈약제사 부인〉, 〈우수〉, 〈정조〉 등의 작품은 유머에 비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 법한 사건 전개와 정서를 담은 10여 쪽 남짓한 소품이다. 그러나 체호프는 이 짧은 작품에 생의 단면과 숙명적인 사회의 비극을 동시에 담아내 비굴한 소시민적 근성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동시에 권력층에게 신랄한 항의를 표하기도 한다.
〈상자 속에 든 사나이〉, 〈귀여운 여인〉, 〈골짜기〉, 〈약혼녀〉 등의 작품은 작가로서 체호프의 역량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쓴 작품들이다. 〈상자 속에 든 사나이〉는 체호프식 유머와 애수를 넘어 러시아 지식인층의 염세주의와 암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러시아 사회의 부정, 허위 부패, 모독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으로, 체호프의 페시미즘적 경향이 드러난 주요한 작품 중 하나다.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귀여운 여인〉 역시 체호프의 대표작 중 하나로, 톨스토이가 작품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무려 네 번이나 연이어 읽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러시아 농촌 민중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골짜기〉 역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문단 내 체호프의 지위를 확고부동하게 확립해주었다. 체호프 최후의 작품인 〈약혼녀〉는 페시미즘을 넘어 깊은 애수의 밑바닥에서 광명을 찾고자 노력한 작가의 의도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가장 세련된 리얼리즘 예술인 동시에 상징적인 예술!
숙명적 비극에 포박된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체호프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묘사한 데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관찰하면 그 평범한 생활이 점차 투명해져서 그 안에 넓고 보편적인 의의를 가진 인생 본연의 모습이 떠오른다. 표면적 묘사의 밑바닥에 본연의 모습을 제시하는 체호프의 작품은 가장 세련된 리얼리즘 예술인 동시에 진지한 의미의 상징적인 예술이다. 또한 유머러스한 필치로 사회 모순을 담담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사회의 숙명적 비극과 그를 닮은 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이 체호프가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