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귀족 소녀가 풀 죽은 가난한 노파가 되기까지
사랑, 결혼, 출산, 도덕을 망라하는
여자의 음울한 운명에 관한 보편적 파국의 드라마
《여자의 일생》은 19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 작가로 손꼽히는 기 드 모파상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이다. 이 소설은 처음 출간된 1883년, 8개월 동안 무려 2만 5천 부가 판매되어 당대의 경이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주제와 줄거리 측면에서 스승이자 동료였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모파상은 단편에서 선보인 바 있는 특유의 재치와 위트, 생기로 스승과는 다른 또 다른 생기를 뿜어내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자연주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
주인공 잔은 이제 갓 수도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온 귀족 집안의 소녀다. 잔은 모든 감각을 열고 새로운 세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감각하며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귀족 집안의 자제 줄리앙과 결혼하며 그녀 인생은 조금씩 기대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줄리앙은 잔을 사랑하는 듯 굴면서도 점차 폭력적으로 처신하고, 다정하고 온기 넘치던 잔 가문의 기풍과는 정반대의 행실을 일삼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신혼 초부터 외도를 일삼아 잔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든다.
잔은 이런 와중에도 사랑과 가정, 도덕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되기만 하고 이내 잔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절망적으로 회수하기에 이른다. 이후 잔은 자녀 양육, 종교 등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다할 대상을 찾아 나서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잔의 기대는 매번 배반당하고, 그때마다 잔의 몸과 마음, 재산은 서서히 소진된다.
“인생이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닌가 봐요.”
여성이 마주한 보편적 좌절과
그로 인한 내면의 어둠에 대한 섬세한 지도
잔은 평생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무언가를 간절히 찾았다. 빈털터리가 되고 초라한 노파가 된 후에도, 잔은 손녀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이처럼 잔은 자신 행복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지 못한 채 지속해서 다른 대상에게 위탁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의미심장해지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잔의 운명을 ‘모든 여성’에게 확대하기 때문이다. 모파상은 잔이 좌절하는 과정에서 그녀 내면에 어둠이 피어나는 과정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냈는데, 이 역시 잔의 이야기를 어느 ‘불운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여자의 일생》이 사회, 문화적 제약으로 누군가에게 의탁한 채로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자의 음울한 운명에 관한 보편적 파국의 드라마로서 갖는 힘은 여기서 생긴다.
다른 한편, 모파상은 노르망디의 목가적 풍경을 특유의 필치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는 작품의 주제와 묘한 대비를 이루어 잔이 마주한 비극적 운명의 색채를 다시 한번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항구적 아름다움의 노르망디와 파멸해가는 인물의 운명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이 그려내는 잔의 신산한 삶을 통해, 독자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며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설 동기와 더불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제약들을 곱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