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빛바래고 오래된 물건들로 전하는 역사의 진한 감동
-110점의 역사 컬렉션으로 일제시대사를 새롭게 읽는다
-200여 개의 이미지로 시대의 울림을 오롯이 전하다
저자는 ‘역사 컬렉터’로서 첫 책을 펴낸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장기를 재활용해 만든 태극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감격에 겨워 일장기에 덧칠해 급하게 만든 태극기였다. 저자의 수많은 수집품 중 하나에 불과했던 그 색바랜 태극기 한 장은 수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 그것이 가진 시각적 힘이 그날 그 현장으로 우리를 이끌어 해방의 감격을 오롯이 느끼게 한 것이다.
저자의 방은 그가 30여 년간 모아온 방대한 수집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한 점 한 점 사연 없는 물건이 없다. 그래서 그 가운데 110점을 선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자와 편집자가 자료 더미를 헤치며 옛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물건들로 고르고 골라 이 책에 담았다. 개항부터 망국, 일제 강점, 해방 직후까지 110점의 컬렉션, 200여 개의 이미지로 글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울림을 전한다.
최초의 태극이 도안이 실린 미국 해군이 발행한 책, 순종의 칙령, 독립선언문 필사본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에서부터, 편지, 일기장, 책자, 영수증, 우표와 엽서, 온갖 증명서 등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일상의 물건들까지 거시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입체적인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또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거대한 역사에 가려진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들여다보며,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눈높이에서 각각의 수집품이 지닌 이야기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핌으로써 더욱 생생하고 친근하게 한국 근현대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수집품) 대부분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묻어 나는 것들이다. 나는 역사 컬렉터이자 기록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소해 보이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어, 기억해야 할 역사로 남기고 있다. … 단순히 역사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물건들에 담긴 옛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전하고 싶었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4, 8쪽)
2. 내 방안의 컬렉션에서 모두 함께 공감하는 역사로
-수집가의 열정과 기록학자의 안목, 역사 교육자의 전문성이 만나다
-역사를 만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역사 서술
《내 방안의 역사 컬렉션》은 30년 이상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교육자의 전문성과 역사 기록을 다루는 기록학자로서의 경험, 수많은 역사 자료를 직접 수집해온 컬렉터의 열정과 안목이라는 삼중의 정체성이 만들어낸 책이다. 수집품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그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조명하는 서술과 수집품 이미지는 역사를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을 더하며, 독자들이 시각적으로 풍부한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을 구성하는 글 110개는 개항부터 해방 직후(한국전쟁 직전)까지 시간의 순서를 따라 크게 다섯 시기로 ‘큐레이션’했다. 책 자체가 작은 박물관이 되어 독자들이 마치 전시를 관람하듯 역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한다. 또 각각의 글은 수집품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조명하면서도 짧고 핵심적으로 그 내용을 전달하는데,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현대 독자들이 부담 없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다.
〈1장 새나라의 꿈〉은 조선이 개항한 시기부터 1910년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직전까지를 다룬다. 바깥세상과 만나기 시작한 조선과 새 나라 대한제국의 개혁으로 달라진 한국인들의 일상, 그리고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가는 그 불안한 과정들을 여러 흥미로운 수집품으로 살펴본다.
ㆍ 최초의 태극기 도안(20쪽, 이하 쪽수만 기재), 춘향전 프랑스어판(24), 일본인을 위한 조선어독학서(28)
ㆍ 건양 연호가 적힌 고종의 칙령(45), 단발을 명하는 훈령(92), 위생청결법 제정 직후의 훈령(64)
ㆍ 경성전쟁 기록화(36), 러일전쟁 당시 발행된 군표(68)
ㆍ 러일전쟁 화보집에 실린 원태우 지사 삽화(76, 78), 화폐정리사업으로 사라진 백동화(72)
한일병합을 알리는 순종의 칙유로 시작하는 〈2장 나라를 빼앗기다〉와 〈3장 계속되는 전쟁의 일상〉, 〈4장 황국의 그늘 아래〉는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를 다룬다. 일제의 식민지 통제와 업압, 전시 체제하에서 노골화한 수탈, 그로 인해 변화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수집품들을 담았다.
ㆍ 경찰범 처벌 규칙이 실린 형법 책과 태형 사진(120, 122), 제복 입고 칼 찬 교사들 사진(138)
ㆍ 김정호 신화를 활용한 일제의 보통학교 교과서(206)
ㆍ 애국 비행기 헌금 모집 포스터(210), 한글로 일본어 발음을 표기한 황국신민 서사 전단지(238)
ㆍ 조선 한우 수탈을 보여주는 축우 경기대회 상장(262), 공출 기념사진과 결전 식기(278, 280)
ㆍ 미영격멸 노래 전단(320)
그뿐 아니라 한반도 안팎에서의 조선인들의 꺾이지 않는 조용한 저항과 독립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수집품도 함께 실었다. 하지만 이런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수집품과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식민지 조선인들 삶을 담고 있는 수집품들은 그들의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가늠해 보게 한다.
ㆍ 태극기가 그려진 상장(106), 무궁화 한반도 모양 자수(111)
ㆍ 기미독립선언서 필사본(130), 중동학교 동맹휴학 호소문(185)
ㆍ 미국 국민회 입회 증서(114), 미국 우표에 그려진 최초의 태극기(298)
ㆍ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출전하는 청년들의 사진(248, 250), 징병 나가는 아버지의 유언장(330)
〈5장 해방의 빛, 다가오는 어둠〉은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를 다룬다. 해방의 감격은 물론이고, 독립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좌우 세력의 정치적 대립과 긴장,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일상의 노력과 그에 반하는 움직임, 미군정기 다양한 사회적 변화상 등을 살필 수 있다.
ㆍ 일장기를 재활용한 태극기(340), 해방 1주년 기념엽서와 우표(370)
ㆍ 조선건국준비위원히 포고문(342),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의 ‘독립 첫인사’ 전단(350)
ㆍ 미군과 한국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344)
ㆍ 창씨명과 본래 이름이 앞뒤로 적힌 문패(352), 창씨 사실을 밝혀둔 족보(354), 한국어로 쓰인 ‘상짱’(380), 글자가 지워진 황국신민서사비(385), 일제 경찰을 지낸 사람의 이력서(364)
ㆍ 미군정이 발행한 민주주의 교육서 ‘입헌정치개요’(390), 국문 학습서와 국어 교사 모집 포스터(356, 358), 작대기 기호가 적힌 선거 홍보물(410)
3. 고통과 시련의 역사에서 성취와 환희의 역사로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옛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담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다. 그러나 그중 몇몇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말로 시작되는 저자의 서문(책을 펴내며)은, 이 책이 단순히 일제시대의 어두운 역사만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150여 년 전부터 시작된 한국 근현대사의 혹독한 격랑 속에서, 특히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역사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스쳐 지나간 성취와 환희도 함께 들려준다.
서문에서 소개하는 1899년 《제국신문》에 실린 익명 필자의 꿈은 놀랍다. “서울 종로에는 10여 층씩 되는 옥석으로 지은 집들이 고층으로 솟아 있고, 전기와 통신망이 잘 연결되어 있으며” “문자 해독률이 99퍼센트 이상일 정도로 교육 제도가 발달했으며”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표들이 의회에서 나랏일을 의논한다”는 이 꿈은 마치 21세기 지금의 대한민국을 예언하는 듯하다. 백범 김구 역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고,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이런 꿈들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의 꿈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되었음을 짚으며 "이런 성취는 거저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수많은 한국인이 피땀과 눈물 그리고 치열한 투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아무리 혹독하고 절망스러웠던 시대일지라도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 기록되지 못한 보통의 삶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음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