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삶의 결실
“어떤 경우가 되든 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끝까지 힘쓸 것입니다.”
1993년 사제 서품 기념 상본에 새겨진 이 구절은 변종찬 마태오 신부의 삶과 학문을 꿰뚫는 좌표였다. 『혼돈 속의 질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은 그의 유고 논문 17편과 미발표 원고 1편을 한데 엮어 펴낸 책으로, 아우구스티누스와 여러 교부에 대한 그의 헌신적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교부학 연구의 기반이 부족한 한국에서, 변 신부는 로마 교부학 대학 아우구스티니아눔에서 유학하며 그 기반을 닦았다. 기존의 석사 학위가 있었지만, 학부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는 결단, 외국어와 도서관 순례를 통한 자료 탐색, 그리고 거의 10년에 이르는 박사학위 여정은 학문에 대한 그의 고집스러운 성실함을 드러낸다.
귀국 후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와 가톨릭평화방송(CPBC)에서의 대중 강연을 통해 그는 교부학을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전달하고자 했다. 「신앙의 재발견」, 「가톨릭 신앙의 보물들」 같은 강연 프로그램은 이 책과 함께 신부의 신학적 열정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병마로 갑작스레 멈추었다. 투병 중에도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문헌 번역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생일 다음 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고전에서 찾은 오늘의 신앙
이 책은 단지 교부학 논문집이 아니다. 한 신학자로서의 성실한 탐구와 사제로서의 겸손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변 신부가 일생을 바쳐 연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살아 있는 가르침으로 되살아난다.
제1부에 실린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글은 그의 우정 개념, 부정신학, 죽음의 공포, 창조론, ‘의로운 전쟁’ 이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특히 『강론』 84-86에 대한 분석은 부와 가난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윤리적 판단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론적 관점으로 확장한다. 제2부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생활과 사제직에 대한 통찰을 조명하며, 제3부에서는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치프리아누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등 다른 교부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고전의 분석을 통해 오늘의 교회와 신자에게 실질적 울림을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혼돈 속의 질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교부들의 사상이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 여정에 살아 있는 길잡이임을 보여준다. 방대한 참고문헌과 함께 이 책은 후속 연구의 토대이자, 교회와 하느님을 향한 저자의 사랑과 헌신을 되새기게 하는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