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는 왕비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바람나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에서 영국 성공회로 국교까지 바꾸었다. 그런데 이렇게 쟁취한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식어버리고 또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이번에는 앤 불린을 교수형에 처한 이야기는 지금도 각종 콘텐츠로 소비될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가 보인다. 헨리 8세는 결혼을 위해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그 영향으로 인클로저 운동, 중상주의의 대두, 전쟁과 화폐개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졌다.
이처럼, 인류의 모든 역사는 경제의 시선으로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 강영운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미시경제학의 창시자로도 불리는 위대한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말처럼 “경제학은 단순한 통계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부를 추구하는 인류의 욕망을 들여다보면 경제의 역사가 보인다
《돈으로 읽는 세계사》는 경제와 돈에서 시작되는 기존 경제사 책과 달리 인간의 욕망을 통해 경제를 들여다본다. 세상의 모든 발견과 발명품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등장했고, 이는 경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풍족한 것과 부족한 것을 쉽게 교환하기 위해 돈이 만들어졌고, 이 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은행이 탄생했다. 누군가는 사업을 위해 돈이 더 필요하고, 누군가는 돈이 있지만 더 벌고 싶은 욕심으로 투자가 시작되었다. 바다 건너 사람들과도 거래하고 싶어 무역이 발달했고 강제로 뺏으려는 해적들도 등장했으며, 이를 지키고 더 확장하려 하면서 대륙에까지 다다랐다. 혁신적인 기술로 돈을 벌어보려는 상인의 노력은 기술을 전 세계로 전파시켰고, 전쟁이 무역을 중단시키자 내부에서 새로운 산업 혁신이 일어났다.
인간의 욕망은 이처럼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경제의 모든 것이 탄생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인물의 욕망, 또는 인류 보편의 욕망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다다른다. 역사 속 사건을 흥미롭게 살펴보는 동안 경제 상식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경제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책 한 권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 고대 물물교환부터 현대의 가상화폐까지 모든 것을 담으려 욕심내기보다, 경제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친근감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기에 금본위제, 중상주의, 은행과 주식, 채권의 탄생 등 현대 경제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16~19세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중세 봉건제,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명확하던 시대의 어둠을 지나 모든 개인의 욕망이 부를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한 근대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돈’의 시각에서 본 역사는 새롭고 역동적이다.
▮세금, 화폐, 주식, 은행…돈과 관련된 모든 것의 세계사
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돈으로 읽는 세계사》에서는 다섯 개의 테마로 나눠 구성했다. 1부 생존의 경제사는 살아남으려 애쓰다 보니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진 사건들을 담았다. 성지순례에서 탄생한 최초의 은행 시스템, 전쟁 준비를 위해 채권을 발명한 도시국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장자상속제가 가져온 귀족제의 몰락 등을 살펴본다.
2부 역설의 경제사에서는 위기가 성공의 단초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다룬다. 무리한 과세를 단행한 왕에 대항해 탄생한 마그나 카르타, 정부와 재혼하기 위해 헨리 8세가 단행한 종교개혁이 경제 성장의 밀알이 된 이야기, 엄청난 은광을 발견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진 스페인의 몰락, 비슷한 시기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서양과 동양의 명암 등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경제사의 거물들이 등장한다. 16세기 영국에 증권거래소와 경제전문학교를 세운 토머스 그레셤, 17세기 프랑스의 중상주의를 이끈 콜베르, 19세기에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된 소득세를 처음 만든 윌리엄 피트, 20세기 현대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케인스와 하이에크 등이 그 주인공이다.
4부에서는 투자 역사를 꿰뚫는 ‘거품(버블)’ 사건을 살펴본다. 남해회사, 미시시피회사, 튤립 투기 같은 익숙한 사건부터 그리스에서 남아메리카에 이르는 각종 독립 채권까지, 투자로 한탕 벌어보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품의 역사를 아우른다.
마지막 5부에서는 조금 색다르게 ‘음식’으로 경제를 살펴본다. 종교에 의해 금지된 육식과 버터에 얽힌 한자동맹, 종교개혁 등의 사건을 다루고, 차별적인 소금세가 프랑스 혁명에 미친 영향도 살펴보며 음식이 경제사를 어떻게 흔들었는지 확인한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생활, 안정된 삶, 삼시세끼 걱정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원초적 욕망이다. 인간은 그런 안정을 추구하고, 나아가 부를 추구하게 되었다. 부는 다시 권력으로 흘러가며, 그 욕망은 마침내 역사까지 바꾸었다. 세계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경제가 얽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