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아니었지만, 왕보다 강한 이름
- 역사의 공백 속에서 되살아난 백제의 숨은 주인공
- 기억되지 못한 리더, 곤지를 다시 만나다
『곤지왕』은 백제 제21대 왕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곤지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역사대하소설이다. 작가는 곤지가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왕’이라는 칭호로 불릴 만큼 정치적ㆍ역사적 영향력이 컸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역사서에서는 그 이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역사적 공백을 문학적으로 복원하며, 잊힌 인물 곤지를 백제사의 중요한 축으로 끌어올린다.
이야기는 곤지가 어린 시절 영암으로 보내져 자신의 출신성분을 모른 채 성장한 뒤 한성으로 와 겪는 내적 갈등과 현실적 위기, 그리고 백제 왕실 내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고심 어린 행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개로왕의 참혹한 최후와 그 이후의 정국 혼란 속에서 곤지는 백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왕실의 명맥을 잇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작가는 이 인물의 삶을 통해 ‘왕이 아니면서도 왕에 가까웠던 존재’라는 이중성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곤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단순한 왕위 계승권을 넘어선 더 깊은 리더십의 의미와 마주하게 된다. 백성을 향한 책임감, 왕족으로서의 품위, 나라에 대한 충정이 곤지의 선택 하나하나에 스며 있다. 특히 동성왕과 무령왕으로 이어지는 백제의 왕통 속에서 곤지의 존재는 단순한 조연이 아닌, 결정적 연결 고리로 작용했음을 소설은 강조한다.
『곤지왕』은 정사의 그림자에 머물던 한 인물을 조명함으로써, 역사란 결국 누가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삼국의 첨예한 대립 속, 조용히 역사를 움직인 인물 곤지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영향력과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을 되살려낸 이 소설은 문학이 할 수 있는 역사적 복원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