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장미 1kg에 3,700만원?베티버에서 파촐리까지
『프레그런스, 자연의 향기』는 전 세계 조향사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100가지 핵심 원료를 엄선해 소개한다. 각 원료마다 식물의 생태적 특성부터 향수로 변화하는 과정, 그리고 그 향을 사용한 대표적인 향수들까지 상세히 다룬다. 연간 매출 4,700만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라벤더 오일 시장부터, 무게당 금보다 비싼 샤프론까지, 향료 시장의 놀라운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시트러스, 색깔 있는 꽃들, 흰 꽃들, 장미, 과일, 풀, 허브, 식물의 수지, 향신료, 나무 등 다채로운 챕터로 나뉘어 있다. 각 챕터는 해당 식물군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개별 식물들을 하나씩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장미 섹션은 별도로 구성되어 "꽃의 여왕"다운 향기의 근원과 불가리아 장미, 터키 장미, 타이프 장미, 센티폴리아 장미 등 각 품종의 독특한 특성을 자세히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 원료에 얽힌 놀라운 스토리들이다.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센티폴리아 장미 오일 1킬로그램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1톤의 꽃이 필요하며, 그 가격이 3,700만원에 달한다는 사실, 19세기 카슈미르 양모 숄에 좀벌레 방지용으로 사용된 파촐리가 어떻게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되었는지, 영국 해군이 괴혈병 예방을 위해 선원들에게 라임 주스를 제공해 "라이미(Limey)"라는 별명이 생긴 과정 등의 역사적 에피소드 역시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현대 향수 산업의 이면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향노루에서 추출하던 머스크가 동물 보호로 인해 식물성 대체재인 암브레트 씨앗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많은 "천연" 향수들이 실제로는 합성 향료를 사용한다는 사실, 은방울꽃이나 제비꽃 같은 "침묵의 꽃"들은 향을 추출할 수 없어 조향사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향을 재현한다는 점 등을 통해 향수 산업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책에는 각 페이지마다 그 원료를 사용한 대표적인 향수들도 소개되어 있어, 실제로 향수를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가이드 역할도 한다. 겔랑의 샬리마, 디올의 미스 디올, 크리드의 아벤투스, 샤넬의 No5 등 명작 향수들이 어떤 원료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어, 향수 애호가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조향의 본질자연의 언어로 쓰인 마지막 예술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모든 분야를 바꿔놓고 있는 시대에, 조향은 여전히 자연의 언어로 써내려가는 몇 안 되는 예술 분야다. 또한 현재 전 세계 향수 시장 규모는 약 600억 달러에 달하며,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니치 향수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소비자들의 향에 대한 관심도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향수 애호가들에게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향수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하나의 향수가 탄생하기까지의 복잡하고 예술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탑 노트, 하트 노트, 베이스 노트로 구성되는 향수의 구조와 시간에 따른 변화 과정을 쉽게 설명해, 향수를 사용할 때 더 깊이 있게 향을 음미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 큐가든이 소장한 아름다운 식물 일러스트와 함께 구성되어 있어, 책장에 꽂아두고 수시로 펼쳐보는 비주얼 북으로서의 매력도 충분하다.
요즘같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이 책은 향수 원료들의 생태적 현실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아가우드 나무의 멸종 위기로 인한 국제거래 제한, 세쿼이아의 산불 피해와 기후변화 영향, 오크모스의 알레르기 논란으로 인한 사용량 제한, 보스웰리아 종의 과도한 채취 문제 등을 통해 향수 산업이 직면한 환경적 과제들을 제시한다. 동시에 서호주에서의 지속가능한 샌달우드 재배,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독립 재배단지 부활 등 긍정적인 변화도 소개하며 독자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프레그런스, 자연의 향기』는 "향에는 고유의 울림이 있다는 인류의 오래된 믿음에 보내는 헌사"라는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줄 자연의 지혜를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