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아니어도 무대는 빛날 수 있다
박민애 시인의 『아이돌 아니지만』은 동시라는 장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과 세계의 깊이를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 작품집이다. 이 시집은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대중문화 속 찬란한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인은 “아니지만”이라는 부정의 의미를 덧붙임으로써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들을 불러낸다. 주목받지 못하고, 당연하게 지나쳐버린 존재들-냉동실 속 반찬, 동네 붕어빵, 숙제에 밀린 축구공, 굴비교육생으로 오해된 할머니의 메모까지-이 시인의 시 속에서는 당당한 주연이 된다.
시인은 사람과 사물, 관계와 감정을 관찰하는 데 탁월하다. 그리고 그 관찰은 결코 겉돌지 않는다. 가령 「애쓴 라인」에서 자녀를 위해 몸을 내어주는 엄마의 현실을 ‘굵어지는 팔뚝’, ‘허리도 안 보이는 고무줄 바지’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포착하고, 그 속에 깃든 ‘애씀’이라는 가치를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생활의 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감성의 언어다.
이 시집의 미덕 중 하나는 ‘위트’와 ‘울림’의 경계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점이다. 예컨대 「김밥집 휴무」는 단 넉 줄로 독자의 미소를 자아낸다.
죄송합니다
오늘
김밥이
소풍 가고 없습니다
이렇듯 유쾌한 발상과 언어의 유희는 시집 전반에 퍼져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웃음 뒤에는 반드시 짠함이 있고, 재치 뒤에는 공감이 따른다. 「분리」에서는 엄마가 자녀를 타인과 비교하며 서서히 감정적으로 멀어지는 순간을 “분리수거”처럼 묘사하고, 「굴비 교육생」에서는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의 오독을 통해 언어와 나이듦의 서정을 끌어올린다.
또한 이 시집은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노년의 외로움, 중년의 고단함, 어린이의 혼란이 교차하면서 각 세대가 겪는 소외와 애씀이 자연스럽게 포개어진다. 시인의 시선은 단순히 ‘동심’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언어를 빌려 ‘삶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박민애의 『아이돌 아니지만』은 결국 “세상은 아이돌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무대 밖에 있던 것들, 무대에 오를 기회를 갖지 못했던 존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책이다. 이름 없이 사라진 것들, 사소하다고 여긴 순간들이 가장 진실하게 삶을 증언하고 있음을 이 시집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