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고통과 자기 해체의 과정에서 길어 올린 언어의 흔적을, 또 한 사람의 시인이자 번역자가 자신의 내면과 교차시켜 버무려 낸 체험의 기록, 『산란의 자화상』.
포르투갈 시인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는 삶 전체가 하나의 추락이자 시였던 사람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어낸 자리에서, 언어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를 길어 올렸다.
그의 시는 안정된 의미나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파편적이고 감각적이며, 논리보다는 리듬과 색채, 침묵 속의 절망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이 시집은 ‘해석하는 시’가 아니라 ‘느끼는 시’다. 시의 리듬, 침묵, 반복, 단어 하나에 담긴 감정의 밀도가 마리우 시의 핵심이며, 역자 한유림은 이를 ‘옮기는’ 것을 넘어 함께 ‘겪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집은 한 인간의 내면이 흩어지고 해체되며 다시 자신과 마주하는 감정의 자서전이자, 오늘날 우리가 외면했던 내면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섬세한 거울이다. 생존을 위해 시를 썼던 100년 전 시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정의 감각을 잃어버린 현대 독자들에게 깊이 있게 울린다. 이 책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시의 밀도로 견뎌낸 한 존재의 기록이며, 동시에 어떻게 시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문학적 증거다.
『산란의 자화상』은 시를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언어의 가장 날 것의 자리에 가닿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고 아련한 감각을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