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을 대표하는 신학자, "대중의 신학자" 마커스 보그의 유작
오랜 삶의 여정을 통해 내어 놓은 신학적 회고록, 혹은 신학적 유언
종교 언어는 종종 삶의 언어와 멀어진다. 익숙한 단어일수록 손쉽게 무뎌지고, 교회 안에서조차 “하느님”, “예수”, “믿음”이라는 말들은 때때로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공중에 붕 뜨기 일쑤다. 마커스 보그는 이 간극을 일생 동안 좁히려 애쓴 학자였다. 그는 ‘신약학자’라는 직함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세계에서 신앙이 무슨 의미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정직하게 응답하고자 했던 대중 신학자였다.
『마커스 보그의 고백』은 이 마커스 J. 보그가 70세를 맞이해 쓴 일종의 회고록이자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질문들에 대해 삶의 말미에 내놓은 응답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신학적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억과 회심, 그리고 확신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보여주며 보그는 신앙이 단지 배운 것을 고수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내고 다시 말해내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책은 유년기 루터교 교회에서 만난 순전한 신앙을 기억하며 시작된다. 이윽고 그 신앙은 대학에서 접한 성서비평, 과학적 세계관, 더 넓어진 세계 앞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신앙을 떠나고 새롭게 자신의 신앙을 돌이킨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더 깊고 넓어진 이해로.
그에게 하느님은 더는 저 너머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 안에 현존하면서도 우리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실재다. 예수는 단순한 도덕 교사도, 불안의 도피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여는 하느님의 현현, 우리 삶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 존재다. 성서는 무오한 진리의 목록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응답과 해석이 겹겹이 쌓인 신앙 공동체의 이야기다. 보그의 여느 책들이 그렇듯 이 신학적 회고록에서도 그는 신앙의 언어를 다시 기술하고,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본다. 그렇게, 그는 신앙이 정답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며,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는 감각임을 몸소 보여준다.
여러 서평자는 이 책을 “보그의 가장 목회적인 책”, “진보적인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안내서”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삶을 통해 정말로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믿음이라면, 그 믿음을 적절한 어휘로 말할 수 있는가? 보그는 말한다. 자신은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따른다고. 그리고 이 세상이 하느님의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고. 이 고백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의심하고,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신앙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도움과 자극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