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문자 받고 나갔다
피노키오가 도란도란 들려주는 다정한 거짓말
달팽이는
아주 오래 오는 친구라서
얼마나 긴 환대가 필요한지 몰라요
하지만 달팽이는
아주 오래 가는 친구이기도 해서
떠나는 길이 아주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말아요
_「달팽이 오시네」
『달팽이 문자 받고 나갔더니』에 실린 52편의 동시 중 13편에 달팽이 혹은 민달팽이가 등장한다. 이처럼 달팽이는 김성민 시 세계로 들어가는 중요한 안내자이다. 김성민의 달팽이는 느리지만 진득하게 돌아다니며 만물을 환대한다. 자기도 먼 길을 떠나면서 동무에게 “그래, 너도 잘 가” 다정히 인사하고(「집으로 가는 길」), 꽃이 피어나고 지는 모든 순간에 진심으로 “안녕”을 건네고(「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는 인사성이 참 밝아」), 친구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도 “내일은 꼭 만나자” 하며 웃는다(「옆집 사는 달팽이」). 김성민 시인은 낮은 곳에서 한없이 느리게 살아가는 달팽이를 반복해 보여 주며, 경쟁 대열에 뒤처져 불안해하는 아이들에 대해 연민과 연대를 꾀한다.
피노키오는 거짓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자라난 코를 잘라
불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조금 오래가는 불길이 일기도 했는데
내가 나오는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내 이야기가 오래가서 좋았습니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참 따뜻했습니다
_「모닥불」
이 동시집에서 달팽이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존재는 바로 ‘피노키오’다. 거짓말쟁이의 대명사인 피노키오는 김성민랜드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모닥불의 땔감으로 쓰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모닥불」), 우주여행을 위해 거짓말로 코를 쭉쭉 늘려 달까지 닿게 한다(「달 탐사 계획」). 시인의 세계에서 피노키오의 거짓말은 쓸모를 가진다. 쓸모가 있기에 “피노키오랜드”에서는 “거짓말이 일상”이다. 시인은 다른 어른들처럼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본인이 직접 피노키오가 되어 “허풍과 상상력과 모험심”이 뒤섞인 거짓말의 세계로 아이들을 안내한다. “아이의 본모습”을 지닌 피노키오처럼 자유롭게 꿈꾸고, 거침없이 얘기하라며 응원을 건넨다.
또르르 울 일 데려온 물방울
눈물이 모여 바다가 되도록
김성민 시인은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 단단한 동시 세계를 보여 준다. 하지만 어린이에게도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리는, 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자꾸 눈물 속에만 있으려” 하는 민달팽이(「슬픔이랑 산책하기」), 또렷하게 반짝이며 “울 일” 있는 물방울(「물방 울 일」), 떠나는 길이 아주 “눈물 콧물 범벅”이 되는 달팽이(「달팽이 오시네」) 등 축축한 감정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지켜준다.
또르르 울 일 데려온 물방울
울음은 아무래도 그치질 않았단다
온몸이 아무리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그만큼 많은 눈물을 쉬지 않고 흘리다니
마치 눈물로 기적을 만들려는 것 같았지
물방울이 흘린 눈물로 우리 발 디딘 곳은
섬이 되고 말았지
아무도 좌절하진 않았어
눈물이 결국 거대한 물길을 내리란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린 힘 모아 커다란 배를 만들었고
그렇게 모험은 시작되었지
_「물방 울 이야기」
시인은 아이들의 내면에 숨은 슬픈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차라리 “울 일”을 잔뜩 데려오라고 한다. “눈물을 쉬지 않고” 흘려 마침내 바다를 이룰 때까지. 이것은 슬픔에 잠식되어 버린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다.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결국 거대한 물길을 내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컷 울고, 슬픔을 함께하며 마침내 “우리”가 된다. “우린 힘 모아 커다란 배를” 만들어 위대한 모험을 시작한다. “눈물로 기적을” 만든다. 남호섭 시인은 이 동시집을 읽으면서 “유독 다정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는, 이런 ‘공감’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달팽이 문자 받고 나갔더니』는 어린이의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 장난치고 싶은 마음, 때로는 울고 싶은 마음을 따뜻하게 껴안는다. 오늘도 김성민 시인은 달팽이, 피노키오, 물방울 들과 함께 김성민랜드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충분한 어린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꼬깃꼬깃한 하루를 꿈틀꿈틀 펴 드립니다
찰나의 빛을 포착하는 ‘낙서가’의 일러스트
잔뜩 구겨진 하루의 틈새에서도 빛나는 재미를 포착할 줄 아는 최진영 화가는, ‘낙서가’다운 순발력과 기발함으로 『달팽이 문자 받고 나갔더니』의 이상한 다정함을 한껏 끌어올렸다. 와글와글한 그림부터 고요히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까지 막론하고 통통 튀는 발상은 마치 불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민들레 꽃씨 같다. 장난스러움과 진중함을 모두 갖춘 안정적인 그림은 시의 여백을 채우기도, 오히려 비우기도 하며 탁월한 완급 조절을 보여 준다. 말의 재미와 철학적 자장을 모두 갖춘 김성민 시인의 시와, 명랑한 언어에서 피어난 온기를 포착해 사랑스럽게 낙서한 최진영 화가의 그림이 만나 펼치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동시집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