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죽음을 바라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음식은 먹는 대로 토해버리고 악몽에 시달려 잠을 거부하는 ‘나’는 늘 삶이 괴로웠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므로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진단은 받지 못했고 증상이 나아지지도 않아서, ‘나’는 학교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은 채로 아버지와 집에서 단둘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25년 전,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출혈이 멎지 않아 그대로 돌아가셨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오빠와 두 언니는 ‘나’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나’를 공공연하게 미워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나’를 각별하게 여기고 애지중지했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그릇된 애정이 ‘나’를 더욱 병들게 만들고 있었다. 섭식 장애, 불면,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 형제들로부터의 소외……. 스물다섯 살의 ‘나’는 고통으로 가득한 삶에 아무런 미련을 갖지 못해 간절히 죽음을 바랐지만, 아버지의 강요와 협박으로 특별한 수술을 받는다.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해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융합수술’을.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영생을 얻는다는 선택이 ‘나’에게 또 다른 형벌이 될 줄은.
끝없는 고통에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한 기계 인간의 순정한 독백
삶의 모든 모순이 한 존재 안에서 충돌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다. 수술을 받은 뒤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사실 더는 인간일 수 없고, 죽음을 간절히 바랐지만 영원히 죽을 수 없다. ‘뇌만 깜빡일 뿐’ 감정은 사라졌다고 믿지만 여전히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가족을 돌봐야 하고, 폭력과 학대를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폭력을 대물림한다. 몇몇 독자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을 잃었다고 여기는 주인공의 절망적 상황 때문에 이 책을 『인간 실격』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의 주인공 ‘나’는 이처럼 수많은 모순과 역설 속에서 흔들리고 고통받으며 1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인간 실격』의 요조처럼 절망하지 않고 마침내 진실과 마주한다. 진정한 구원은 고통의 원인이 된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졌던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자기 자신이 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했던 일을 ‘바라보며’ 소멸하는 길을 선택한다. 기계가 된 존재가 인간의 삶을 포기했을 때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구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인간답게 살 수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존재의 숭고한 기록이자, ‘인간으로 살아남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대답이기도 하다.
가장 사적이고 이름 없는 고통이
가장 보편적인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어느 누구도 주인공의 이름을 명확히 부르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아빠도, 오빠도, 조카이자 연인인 신조차도 제대로 부르지 않고, 소설 내에서도 ( )라는 표기로 익명으로 처리된다. 주인공이 정확한 이름으로 명명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나’가 이름 없는 기계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상처받은 인물이라면 누구든 될 수 있는 익명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저자 마미야는 서문에서 개인적인 경험이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다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인용한다.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겪는 일은 너무나도 사적이고, 참담하고 비극적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자는 비어 있는 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대입하게 된다. 관계로부터 고립감을 느끼거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고민해본 이들이라면 더욱,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인간 본연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은 SF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인간으로 살아남는 일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고통과 용서, 회복에 대해 묻는다.
해외 서평
- “이런 작품을 읽을 수 있다니 살아 있기를 잘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준 책.” _호시노 겐(가수, 연기자)
- “사랑은 저주와 짝을 이루며 입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나는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을까? 상대방을 저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은 사랑이라고 믿어온 것이 나의 왜곡된 욕심은 아닐까?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고 있었을까? 돌아보면 두렵다. 동시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지금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돌아볼 기회를 받았으니까. 아무도 없는 모든 새벽의 앞, 그녀의 남은 인생에 기쁨이 있기를.” _마치다 소노코(『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작가)
- “기묘한 ‘가족사’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감도는 종말감은 어딘가 청명하다. 감상적이고 쓸쓸하다. 마치 멸망해 가는 인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듯하다. 장르를 넘나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돌연변이적인 작품인 것은 틀림없다.” _야마우치 마리코(작가)
- “지극히 치밀하게 짜여진, 무섭도록 절실한 인간 이야기.” _오모리 노조미(서평가, 번역가)
- “이토록 비극적인 ‘나’의 한탄에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용기를 얻고 만다. SF라는 장르로 가둘 수 없는 소설. ‘나’의 이야기이자 곧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다. 구원이다.” _오모리 도키오(방송 프로듀서)
- “새 시대가 낳은 새로운 고전. AI는 결코 쓰지 못할 문학 세계.” _우치다 츠요시 (북 저널리스트)
-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목격한 것만 같다.” _구마타 유카 (마루젠서점 직원)
- “100년 뒤에도 사람들에게 읽힐 소설.” _무토 유다이 (구마자와서점 직원)
-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리고 있어 기쁘다. 누구나 분명 자신만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덮어두거나 잊은 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연히 지나가던 서점에서 책의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고 구매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대체할 수 없는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이 일이 매우 자랑스럽다.” _이치카와 마이(준쿠도서점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