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 사회는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인간은 공격성을 타고났는가?
호혜와 평등주의를 핵심 원리로 하던 인류의 초기 사회는 왜 계급사회로 변화했는가?
계급사회의 등장과 함께 지배자로 올라선 사람들은 왜 하필 남성이었나?
《민중의 세계사》 등의 저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크리스 하먼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두 저작을 깊이 분석하며 위의 질문에 답한다. 주류 사회과학 학계가 무시하거나 체계적으로 매도한 “유인원이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한 역할”과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 그것이다.
하먼은 엥겔스 사후 100 년 넘게 진척된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의 성과를 살펴보며, 엥겔스가 제시한 통찰의 핵심이 옳았음은 입증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엥겔스는 다윈의 업적에 기대면서도, 진화 단계의 순서를 다윈과 다르게 봤다. 다윈은 두뇌 크기와 지능의 성장이 먼저 일어나고 두 발 보행과 도구 제작이 뒤에 일어났다고 본 반면, 엥겔스는 두 발 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진 덕분에 대규모의 협력적 노동이 가능해졌으며 이로부터 두뇌와 언어가 발전했다고 봤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엥겔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먼은 엥겔스의 주장을 전혀 신성시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적 과학관과의 큰 차이다. 하먼은 엥겔스 사후에 발견된 사실과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엥겔스 주장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교정한다. 또, 엥겔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핵심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보충한다. 그중 하나가 계급사회가 등장하면서 지배자가 된 사람들은 왜 하필 남성이었는지이다.
이 책은 작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역사유물론의 방법, 이 방법을 인간의 진화와 인간 사회의 진화에 적용하는 것의 설득력, 인간의 폭력적 본성 때문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각종 사이비 과학에 대한 비판으로 꽉 차 있다.
하먼은 엥겔스의 통찰을 두고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거의 매일 쏟아 내는 수많은 실증적 자료를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출발점 구실을 한다”고 결론 짓는데, 하먼의 이 책도 같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