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형성한 ‘조지 오웰’이라는 감수성
제1부 시
그대를 죽인 거짓은
더 깊은 거짓 속에 묻혔네.(45쪽)
오웰은 전 생애에 걸쳐 시를 사랑했고 작가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시가 큰 역할을 했다. 대표작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자신의 첫 창작 시도에 대해 말하는데 그 중심에 시가 있었음을 밝힌다. 이 에세이에서 우리는 오웰 글쓰기를 특징짓는 가장 유명한 문장인 “나는 내게 낱말을 다루는 소질과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힘”과 “네댓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는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 시절 넘치는 열정으로 쓴 〈노래〉(“오 한 번 더 나를 보소서, 혹독한 운명이여”), 당시 연인에게 써서 보냈던 〈이교도〉(“우리 발치 잘린 풀 줄기들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네”)부터 버마에서 복무하던 시절의 감정이 담긴 〈친애하는 친구야, 잠시만 내 말을 들어주겠니〉(“우리의 생각을 그런 거짓 속에 잠기게 하잖아,/그러곤 우리 자신조차 그걸 믿게 되지”)와 아직 블레어였던 시절 자신의 삶과 세상의 혼란을 담은 〈때론 깊어가는 어느 가을날엔〉(“다만 꿈결처럼 싸우며, 고생하네”), 〈한순간 여름 같은〉(“하지만 나는 보네, 해를 뒤덮으려 치닫는 암갈색 구름들을”)까지. 세계대전의 참상을 암시하는 〈히스 마스터스 보이스 축음기 공장 근처 폐허가 된 농장에서〉(“연기가 살해한 나무들/사이를 그저 배회할 뿐”)와 스페인 내란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탈리아인 의용병이 내 손을 잡았다〉(“어떤 폭탄이 터진다 해도/그 수정 같은 정신을 결코 산산조각 낼 수는 없으니”), 그리고 마지막 시로 알려진 〈조지프 힉스, 이 교구에 살았던 고인〉(“일곱 가지 끔찍한 고통이 오케스트라처럼 그의 온몸 안에서 연주했지”)은 비극적으로 짧은 생을 붙잡기 위해 오웰이 고통 속에서 분투했음을 알려준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의 시를 읽어왔다. 《동물 농장》의 〈이 땅의 짐승들〉, 〈나폴레옹 동지〉. 《엽란을 날려라》의 〈1935년 성 앤드루의 날〉 등 그는 많은 산문에 자신의 시를 놓아두었다. 독자는 오웰의 시가 한데 모였을 때 발생하는 시적 맥락을,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연민하고 사랑하는 오웰을, 세상을 향한 분노를 토해내는 오웰을, 희망과 상실을 반복하면서도 영원히 깨지지 않는 “수정 같은 정신”을 노래하는 오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내밀한 오웰도 만날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빌려 처음 시를 썼던 네댓 살의 오웰을, 지역신문에 애국 시를 실으며 작가로서 첫발을 디딘 열한 살의 오웰을,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조지프 힉스’라는 화자를 빌려 자비와 간청을 드리는 오웰을, 위대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였지만 뛰어난 시인은 아니었던 오웰을, 그러나 언제나 시인이었던 오웰을,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시로 열고 시로 닫았던 오웰을.
제2부 에세이
우리는 그 시를 함께 읽으며 몸서리쳤고, 그러고는 그걸 잊어버린 듯했다.(85쪽)
오웰의 대표 에세이인 〈나는 왜 쓰는가〉, 〈문학의 질식〉, 〈시와 마이크〉와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까지 총 열 편을 수록했다. 그중 〈난센스 시〉와 〈불쾌함 없는 재미〉는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해 선보인다. 〈난센스 시〉는 전래 동요부터 ‘난센스 시’의 선구자인 에드워드 리어까지 영어권의 난센스 시를 탐구하며 특정 시 장르에 대한 생각을 전개한 글이다. 〈불쾌함 없는 재미〉는 영국 유머 문학의 ‘황금기’를 회고하며 “현대 영국 유머의 시답잖고 멍청한 경향성”을 ‘불쾌하지 않고 재밌게’로 지적한 뒤 진짜 재밌으려면 진지해져야 함을 역설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오웰의 에세이와 시는 비슷한 주제를 공유한다. 나란히 두고 읽으면 좀 더 풍성해지는데, 〈두꺼비 단상〉에서 오웰은 자연이 주는 기쁨은 누구나 접할 수 있고 또 돈도 들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이들의 견해를 비판한다. “공장에 원자폭탄이 쌓여가고 (……) 확성기에서는 끊임없이 거짓말이 흘러나오지만,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돈다는 것이다. 파괴된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히스 마스터스 보이스 축음기 공장 근처 폐허가 된 농장에서〉는 “산성 연기가 들판을 망가트리고,/바람에 시달린 몇 송이 없는 꽃들마저 암갈색으로” 물들었다면서 이곳이 나의 세상이자 집이지만 그저 “연기가 살해한 나무들” 사이를 배회할 뿐이라며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난폭함을 꼬집고, 〈이교도〉에서는 “우리 발치 잘린 풀 줄기들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네”를 통해 태동하는 생명의 기쁨에 대해 노래한다.
한편 오웰은 시 비평으로도 유명했다. 제라드 홉킨스의 시 〈펠릭스 랜들〉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에세이 〈한 편의 시가 주는 의미〉에서는 시와 시인이 공유하는 ‘정서적 내용’을 강조하며, 언어와 세계관은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과학자가 꽃을 분석해도 경이로움이 줄지 않듯 시에 대한 상세한 비평 또한 그 가치를 더한다고 결론 내린다. 특히 이 시가 어려운 것은 단어 사용의 계급성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오웰의 산문이 명료하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것을 고려한다면, 오웰이 시적 언어의 사용을 예리하게 감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3부 라디오 대본
오웰: 이 잡지는 매달 한 번 화요일에 방송될 것이며, 산문을 포함하되 현대 시를 전문으로 다룰 겁니다. 특히 지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응당 받아야 할 만큼 주목받지 못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싣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거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185쪽)
오웰은 〈시와 마이크〉에서 시가 인쇄물에 갇혀 대중과 멀어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라디오가 시를 대중화하는 데 잠재력이 있으며 시를 쓰는 사람이 마이크 앞에 정기적으로 앉아 시를 낭독하고 설명한다면, “시인은 자기 작품과 우리 시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오웰은 BBC에서 일할 때 인도의 청취자를 대상으로 ‘보이스’라 이름 붙인 ‘라디오 시 매거진’을 송출했다. 그는 창간호에서 “폭탄과 총알로 세상의 운명이 판가름 나는” 시기에 시를 다루는 라디오 시 매거진을 만드는 건 “꽤 경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순간 여름 같은》에는 창간호인 제1화의 대본을 수록했다. 오웰은 지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시인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분명히 밝혔고, 당시 영국 정보부의 감시 대상이었던 인도 출신의 좌파 소설가 물크 라지 아난드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시 한 편을 방송할 “오 분의 전파를 확보”하는 것이 거짓 선전을 퍼뜨리기 위해 “열두 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시대. 오웰은 〈보이스〉를 통해 대중에게 시를 돌려주고, 시인과 시와 대중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이는 지적 자유를 수호하려고 했던 오웰의 실천적인 태도의 다름이 아니다.
《동물 농장》과 《1984》 아래 가려져 있던 시인 조지 오웰의 면모를, 이제 《한순간 여름 같은》을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다. 평생에 걸쳐 그를 사로잡았던 시적 고뇌와 생태적이면서 섬세한 감수성을 아우르는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던 산문 너머에 존재했던 오웰의 또 다른 세계로 깊이 빠져들 더없이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