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질화 강요하는 국민국가의 내셔널리즘
내전의 비극 불러온 ‘위험한 욕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식민지 보유국(제국주의 국가)의 국력은 크게 약화했다. 동시에 민족자결 원칙이 부상하면서 식민지의 독립이 잇따른다. 이때 독립한 신흥 국가들의 국경선은 자로 그은 듯 부자연스럽다.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식민지 보유국들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을 그어버린 탓이다. 독립한 국가들은 근대부터 퍼져나간 국민국가 체제를 택한다. 국민국가의 이념은 내셔널리즘이다.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은 동질성을 강화하려는 특징이 있다. 제국주의가 멋대로 설정한 국경선 안에는 서로 다른 민족이 섞여 있고 종교도 언어도 다르다. 내셔널리즘은 이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동질성을 추구한다. 민족, 언어, 종교, 문화 차이를 무시하고 동질성을 높이기 위해 다수파의 정책을 소수파에 강요한다. 소수파가 이에 반발하면 내전이 벌어진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내전의 대표적인 양상이다. 아프리카 내전의 희생자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1,700만 명이 넘는다.
아시아라고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라오스는 이웃 태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언어 내셔널리즘을 내세운다. 두 나라의 언어는 거의 비슷한데, 라오스는 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올바른 라오어’를 창조했다. 라오스 사람들이 경제 수준 높은 태국을 동경하자 태국의 일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100개 이상의 민족이 존재하는 미얀마는 미얀마인이 약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소수민족이다. 다수파인 미얀마인은 미얀마어를 강조하는 언어 내셔널리즘으로 소수민족을 동질화하는 강경 정책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로힝야족이다.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탄압이라는 잔혹한 분쟁을 내셔널리즘이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유라시아에 존재했던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청나라 제국도 내셔널리즘의 확산으로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 해체를 막으려는 과정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많은 분쟁이 발생했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라는 내셔널리즘의 위험한 욕심이 곳곳에서 분쟁을 부추긴 것이다.
형태도 개념도 달라지는 분쟁 패러다임
국제사회 억지력 갈수록 약해진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었다. 각 나라들이 총력전을 펼쳤고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형태가 뚜렷하고 개념이 명확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의 전쟁은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예전의 전쟁과 형태도 개념도 달라졌다.
먼저 비대칭 전쟁이 늘어났다. 국가와 국가가 아닌,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싸우는 전쟁이 비대칭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1960년대부터 70년대)은 미국이라는 국가와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이라는 게릴라군의 전쟁이었다. 1979년부터 시작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출병도 마찬가지로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군과 싸웠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2003년 이라크와의 전쟁(세계 테러와의 전쟁)도 국가와 이슬람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싸운 비대칭 전쟁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국제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분쟁이 늘어난 점도 특징이다. 내셔널리즘으로 세계 곳곳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있지만, 현행 국제법으로는 제재하기 어렵다. 비대칭 전쟁 역시 국제법이 다루고 있는 전쟁의 양상과는 다르다. 자연히 국제사회의 전쟁 억지력도 약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분쟁에 대한 틀을 전시와 평시, 국제와 국내로 구분해서 접근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전시인지 평시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또한 내전의 주체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 발생해도 국제사회가 개입할 근거조차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와그너라고 하는 민간 군사기업이 참전했다. 기업이 전쟁에 참여하고 정규군과 별도의 명령체계로 움직인다는 건 예전에는 없던 개념이다. 군사기업의 작전은 무자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다. 분쟁의 형태는 갈수록 새로워지고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국제법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과 논리
가치의 대립, 분열과 갈등의 새 동력으로
2020년 ‘미국이 내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맞붙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실제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양측의 분열은 심해졌고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서로 다른 가치의 충돌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분쟁의 원인은 국익, 민족, 종교, 언어 등이 가장 큰 요소였다. 이제는 가치라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다. 미국에서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 건 서로 다른 가치가 그 정도로 강하게 대립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분열과 충돌은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세계적으로 가열되고 있는 동성결혼이나 LGBTQ(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퀴어queer) 논쟁이 있다. 이와 관련한 논쟁은 서구권에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관련한 행사를 열겠다는 측과 절대 막아야 한다는 측이 매년 분쟁 아닌 분쟁을 벌인다. 가치가 분쟁을 부르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반이민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난민 유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그들에 대한 가짜 뉴스와 공포 조장 캠페인이 나라를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다.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를 받아들였으면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었다고 사실이 아닌 불만을 의도적으로 퍼뜨린다. 반이민 정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유럽 전체에서 배외주의를 키우고 혐오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문제는 ‘가치의 분배’에 관한 것이다. 기존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가장 중심이 되었던 논쟁은 ‘부의 분배’를 둘러싼 것이었다. ‘부의 분배’는 타협점을 논의하고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가치의 분배’는 다르다. 생각과 인식으로 구성된 가치의 분배는 타협도 조정도 어렵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뿐이다. 쉽게 분열이 일어나고 강한 대립이 생기고 결국은 분쟁으로 내달린다.
분쟁을 보는 자기만의 관점이 필요한 시대
‘옳은 역사’ 구분하는 통찰력 키워야
2023년에 일어난 가자지구 분쟁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분쟁과 관련한 역사 지식이나, 감정으로 색칠한 분노를 의견으로 내놓을지 모른다. 저자는 지식이나 감정보다 분쟁을 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갖출 것을 독자에게 당부한다. 역사 지식은 단지 지식일 뿐이다. 지식이 관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저자가 많은 지도를 활용해 쉽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분쟁 세계사를 설명한 것은 분쟁 너머를 보는 시야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분쟁 그 자체보다 그 너머를 보는 통찰이 각자의 관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올바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옳은political correctness 역사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옮음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최소한의 판단력이 있어야 자기만의 관점이 생긴다.
우리는 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같은 국가 같은 국민 사이에도 대립이 일어난다. 과거를 둘러싸고 서로 미워하며, 가까운 곳에서도 지구 반대편에서도 세계는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시대를 이해하려면 분쟁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완전히 끝난 듯 보이는 과거의 분쟁도 그 속에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과거의 불씨가 새로운 불로 타오르는 게 현재의 분쟁이고, 현재의 분쟁은 미래를 예고한다. 세계의 흐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배경과 미래를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분쟁의 세계사는 교양이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읽는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