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록산 게이(작가, 『헝거』 『나쁜 페미니스트』) 추천
파편화된 기억을 소환하는
적확하고도 강력한 방식
마차도는 한 글쓰기 워크숍에서 장르소설에 대한 강연을 하던 때 『꿈의 집에서』의 형식을 떠올리게 됐다고 밝힌 적 있다. 마치 “높은 곳에서 젖은 아기 기린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고. 둔탁하고 거칠지만 자신이 뭐가 될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존재의 형상이었다고. 동화적이기까지 한 운명적 이끌림과 장르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꿈의 집에서』라는 독특한 형식의 회고록은 완성되었다.
‘내가 만드는 모험담®’이라는 장에서 독자는 잘 때 팔꿈치로 자신을 건드렸다며 폭언을 내뱉는 ‘여자’에게 사과할 것인지,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응수할 것인지를 결정해 그 선택에 따라 정해진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야기가 (마차도의 상황에 빠진) 독자의 올바른 선택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한 답을 선택해 도착한 페이지에서 “여긴 당신이 오면 안 되는 페이지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하면 숨이 턱 막히며 불안해진다. 결국에는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다시 ‘여자’와 함께 있는 끔찍한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텍스트 감옥은 학대당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해자에 의해 짜인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형식으로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데자뷰’라는 장은 작품 전체에서 세 번 반복되며 삽입되어 기시감을 형성한다. 구조가 비슷한 문장이 이어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내용은 미묘하게 변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초반부에서 “여자가 보낸 엄청나게 지저분한 메시지가 와 있고, 그러면 네 가랑이 사이에서 욕망이 발길질을 해대지”라고 쓰였던 문장은 중반부에 “여자가 보낸 기괴하게 모호한 메시지가 와 있고, 그러면 네 허파 사이에서 불안이 발길질을 해대지”로 변하며 후반부에서 “여자가 보낸 놀랍도록 잔인한 메시지가 와 있고, 그러면 네 견갑골 사이에서 공포가 발길질을 해대지”라는 문장으로 변용된다. 책 속에서 독자가 겪게 되는 ‘데자뷰’는 심리적 압박이 판단을 흐리는 교묘하게 점진적인 방식, 가장 익숙하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이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변해가는 잔혹함을 생생히 보여준다.
장르적 특성을 과거의 일들에 적용한 ‘성장소설’ ‘연애소설’ ‘살인사건 수수께끼’ ‘SF 스릴러’ ‘코스믹 호러’, 알파벳 ‘e’를 제외하고 쓴 ‘리포그램’, 특정한 작품의 영감을 받은 ‘푸른 수염’ ‘댈러웨이 부인’ ‘문체 연습’, 그 자체로 수학 문제를 닮은 ‘문장제’까지 다채로운 형식적 실험과 문화 비평으로 이뤄진 작품의 구성은 회고록에 대한 선입견을 당당히 부순다. 아름다울 정도로 정확하게 구현된 형식들은 이야기를 견고히 받쳐주며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사로잡고, 설득한다.
연대와 증언의 공간을 여는
중대한 외침
장밋빛 미래를 담보하는 환상의 공간이자 방탕의 소굴이었고, 이내 유령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공포의 감옥으로 변한 ‘꿈의 집’은 외적으로 어떤 면에서도 특수하지 않으며 되레 평범한 것보다 조금 누추한 모습이다. 마차도는 가장 안전하고 따스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심리적 학대의 배경으로써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간의 공포를 가두고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세상의 사각지대를 벗어나 있는 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꿈의 집’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으로 드러내 보인다.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어떤 것이 진실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져 개똥지빠귀를 땅바닥에 짓누르고, 그 새가 비명을 지르고 또 질러도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면, 그 새는 소리를 낸 것일까? 고통을 겪은 것일까? 누가 알겠는가?” (397쪽, ‘증거’)
마차도는 소환하기 고통스럽고 붙잡아두거나 정의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세상이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더 멀리까지 외치기 위해 용감하고 전략적인 자신만의 글쓰기를 해냈다. 퀴어는 당연하게도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아니며 퀴어 관계 내 폭력은 ‘꿈의 집’처럼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어디에나 있다. 그곳에서 때때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카이브의 거대한 틈을 메워 어떤 학대 생존자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거나 숨을 필요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오롯이 낼 수 있는 증언과 회복과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말이다. 카먼 마리아 마차도는 『꿈의 집에서』로서 결코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그러나 분명 중대한 충격이자 폭발인 진실한 목소리를 이 공간에 내었고, 함께 빈 곳을 채울 모든 울림과 떨림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