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숲을 거닐며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유유동인지 『분침도 시침도 떼고』 해설(‘서정의 숲을 거닐며’)에서 동인지 활동이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 특히 『창조』 『백조』 『폐허』 등 초기 동인지들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문예지 중심으로 문단이 재편되면서 동인지 활동은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고 설명한다. 최근 시인들의 동인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은 서울과 특정 문예지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동인지는 시인들에게 실험과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적 모험을 가능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다가갈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형성한다.
‘유유동인’은 등단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여성 시인들의 모임으로,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서정시의 맥을 굳건히 잇고 있다. 이번 동인지 『분침도 시침도 떼고』의 시편들은 현대 서정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며, 각 시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황정산 평론가는 ‘유유동인’의 작품들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구도로서의 서정시
서정시의 전통적 방식 중 하나는 구도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가는 성찰의 시이다. 이는 시인이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 교감하며 얻는 깨달음이다.
일만의 종소리 따라, 일만의 물고기 따라 내가 흐르네
새 찬 빗줄기 사이 우 우 우박 쏟아지는 하늘 향해
우억 우억 기어오르는 일만의 물고기들
천둥소리에 부딪쳐 무너지네 까무러치네
일만의 바다, 일만의 미륵불이 일어서는 안개 속
내 몸에 돋아난 은빛 지느러미 흔들며 흔들며
일만 한 번째의 물고기 되어 흐르네
만어사 쇠북을 떠난 일만의 종소리 따라 내가 흐르네
- 김현지, 「만어산」 부분
김현지 시인의 「만어산」은 만어사의 물고기 형상 바위를 보며 구도의 길을 오르는 물고기들을 상상하고, 시인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되어 고난의 길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다. 불교적 용어와 자연 이미지를 결합하여 고통을 넘어선 진정한 깨달음의 여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그 일주일 뒤 옆집 할아버지
애개개, 이렇게 얕게 심으면 안 되제
깊게 심어야제 깊게 심어야 토란이 많이 들어서능겨
아, 깊이갈이를 하라는 말이구나
깊이갈이를 해야 생각이 깊어지고
작품이 좋아진다고
선생님께서도 늘 말씀하셨는데
토란을 심으며
물 빠진 저수지, 진흙 바닥 위에서
길을 한참 찾고 있는 내 생生을 본다
- 유동애, 「토란을 심으며」 부분
유동애 시인은 텃밭에 토란을 심는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깨달음을 발견한다.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농부 할아버지의 조언을 통해 인생과 글쓰기에서 ‘깊이갈이’ 즉, 여유와 깊은 사유의 중요성을 터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 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 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 박분필, 「자작나무 자서전」 부분
시 「자작나무 자서전」은 박분필 시인 자신의 글쓰기와 자작나무가 숲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가 접하는 순간, 주체와 대상은 동일시되며, 서로가 연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술 창작,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견인하면서 은유한다. ‘자작나무’와 ‘자작自作’의 언어유희를 통해 창작의 과정과 시인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행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고 자아가 성찰됨을 보여준다.
자연에서 길을 찾다
자연과의 조화와 그 속에서의 삶을 통한 정신적 풍요로움과 정서적 안정 추구 또한 서정시의 중요한 성과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밟히는
황토흙의 입자들
발바닥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부드럽게 해준다
언제부터였더라
내 생각의 전두엽을 짓눌러 대던
고집스러움,
다 내려놓기로 한다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워서
맨발걷기로 나와
소통하기로 한다.
- 이섬, 「또 다른 소통」 부분
이섬 시인은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경험을 통해 복잡한 세상사와 아집에서 벗어나 자연과 진실한 소통을 시도한다. 머리로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 비움과 채움의 조화를 터득하며, 정보 과잉과 피상적 관계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근원적 소통의 회복을 제시한다.
전등사에서 만난 은행나무, 수령이 육백년이라 했다
푸른 잎들이 촘촘히 돋아나서
푸른 필체로 쓴 역사책을 펴들고
내가 들을 수 있도록 맑은소리로 읽어주었다
아침나절 오던 비가 개어서인지
목소리가 매우 청명했다
전등사의 내력이며 고려의 하늘까지 보여주었다
그 시절도 저렇게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노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 이보숙, 「은행나무 실록」 부분
전등사의 600년 된 은행나무 자체가 역사로 성립하면서, ‘은행나무 실록’ 앞에서 선 이보숙 시인은 대상과와의 교감을 통해 역사의 깊이와 자연의 위로를 경험한다.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시간의 기록자로 여기며, 이를 통해 역사와 현재,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합의 순간을 체험한다. 시인의 정서적 직관이 사물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서정적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먹빛이 흐드러지면서 오죽헌烏竹軒 사임당이 한 획을 그은 듯
댓잎 한 촉 피어오르고,
도량에 먹향 번져간다
사전에도 없는 먹대라는 말
머리에 먹물 들고 처음 들어보는 먹대라는 말
참, 그윽하다
- 우정연, 「먹대」 부분
우정연 시인은 「먹대」를 통해서 사전에 없는 새로운 시어를 창조했다. 그는 송광사 오죽과의 만남을 통해 얻게 되는 언어의 신선한 힘을 다룬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사전에도 없는 먹대라는 말”이 탄생하고, 이는 단순한 신조어가 아닌 자연의 감성을 담은 예술적 언어가 된다. 이는 서정시가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서정시는 속된 현실과 틀에 갇힌 삶으로부터 더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
X 광선이 통과한 가슴은 다시 어둠이다
철조망 안에서 장미꽃은 신음한다
엄마의 코티분에서 나던 그 향기가
스멀스멀 철조망을 빠져나간다
향기를 내보낸 장미꽃은 이제 무덤
X 광선으로 다시 읽으니
장미와 철조망이 얼싸안고 춤추는 실루엣,
장미 무덤에 물을 준다.
- 주경림, 「장미 무덤」 부분
김구용의 「장미와 철조망」을 오마주한 주경림 시인의 「장미 무덤」은 내면의 고통과 억압, 그리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한다. 장미는 아름다운 가치를 품고 살지만, 철조망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구속 속에서 고통받는 존재이다. 시는 이러한 억압된 현실에서 언어의 향기를 내뿜으며, 현실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우울증 고인 해마 밭이 까맣게 죽어
제가 갈대인 것도 잊어버린 갈대들
엉킨 가랑이 사이에서
다이옥신을 밴 불임자궁만 부풀어오른다
요즘 내 몸에도 독이 퍼졌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이버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나
안 보이는 손가락 전자파총에 명중 명중!
뇌 속 뉴런이 까맣게 죽어간다
- 이혜선, 「다이옥신을 배다」 부분
오염된 생태계 파괴와 디지털 중독으로 인한 생명력 상실을 이혜선 시인은 ‘다이옥신을 배다’라는 직접적이고 생물학적인 작동으로 강렬하게 비판한다. 갈대밭의 파괴와 시인 자신의 디지털 중독 상태를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자연과 인간 모두가 독에 오염되어 망가지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러한 비판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아무도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나
몽환포영夢幻泡影으로 나부낀 숙연宿緣, 다음날
낯선 화가를 만났고
하염없이 우리에게 던져준 칡꽃송이들,
어느 익숙한 마을에 다다랐다
며칠 후, 김삿갓처럼 객사했다는 그,
유작전遺作展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쓸별 하나가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간,
오방색五方色 빛으로 제 고독을 태우는 행성들처럼
그는 그렇게 타올랐다, 그리고 잊혀졌다
3월, 산불이 그 고택을 데불고 날아오르다가
먼 우주공간 속으로 불티 흩뜨리며 스러졌다
길쓸별의 흔적도 그림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 정복선, 「지례예술촌의 추억」 부분
산불로 전소된 지례예술촌을 회상하며 정복선 시인은 「지례예술촌의 추억」을 복원하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다시 꿈꾼다. 사라진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통해 존재의 허무함을 인식하지만,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기억을 통해 영원히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상실과 결핍의 현실에서 추억을 환기하여 충만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황정산 평론가는 ‘유유동인’의 시들이 농밀한 언어의 향기와 생동감 있는 은유를 통해,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시를 읽는 것은 언어의 숲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이며, 시만이 가진 치유의 힘은 현대사회에서도 우리의 정신을 지켜주는 ‘정서적 케렌시아’로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말의 풍성함이 유지되고, 현대문명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새로운 생명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