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르고, 그래서 흥미로운 우리라는 존재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른들에게도 항상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다름을 향한 존중의 태도를 아주 단순하고 섬세하게 전달한다. 하우는 여행길에서 자신처럼 매달려 있는 존재들을 만난다. 버스 손잡이, 홍시, 거미, 풍경, 별. 이들 모두 매달려 있지만 그 이유는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잡아주기 위해 존재하고, 또 다른 이는 먹히기 위해 또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길을 밝혀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매달려 있다는 ‘형태’는 같지만, 그 형태 안에 담긴 ‘의미’는 모두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정말 따뜻하고 자연스럽다. 하우는 상대의 대답을 듣고 매번 말한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판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자세야말로 진짜 존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비교하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 어른들이 먼저 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추기를 요구하니까 말이다. 그 현실 앞에서 이 책은 말한다. 모두 다르게 존재하고 또 자기만의 이유로 살아간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우가 그 여정을 끝내고 자신도 드디어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다름을 수용하는 태도, 삶의 이유를 찾는 사유, 그리고 존중이라는 가치를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그림책이다. 게다가 어른에게도 이 메시지는 동일하게 유효하다. 서로를 비교하고 다그치기보다 그저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다정한 세상이 될까.
질문은 모든 성장을 여는 열쇠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질문이 생기는 순간이다. 하우는 처음엔 철봉에 매달려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습관처럼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질문이 그 한가로운 반복을 흔든다. 매달려 있는 이유를 물은 질문을 들은 하우는 당황하지만 이내 곧 생각한다. 그 장면이야말로 이 그림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은 아주 작아 보이지만, 한 사람의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질문이 생긴 순간부터 사람은 변화한다. 하우 역시 그랬다. 이후 하우는 여행에서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대답을 들으며 그 존재들이 자기 위치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품은 이 깨달음의 과정은 꽤나 철학적이다. 우리는 종종 ‘왜 살아야 하지?’ ‘왜 이 일을 하지?’라는 질문을 덮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으려 할 때 사람은 진짜 성장한다. 하우 또한 다시 철봉으로 돌아와 드디어 자기 이유를 깨닫는다. 그 매달림은 턱걸이를 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
이 책은 ‘왜’라는 질문의 힘을 찬찬히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알려주고, 어른들에게도 질문을 다시 꺼낼 용기를 준다. 철학은 거창한 언어가 아니라 삶에서 비롯된 질문과 응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출발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책은 드물다.
반복의 힘을 자각하는 순간
하우는 매일같이 철봉에 매달린다. 누가 시키지 않았으며 특별한 목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우는 매일 같은 자세로 같은 철봉에 매달렸다. 이 반복은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 하우는 자기도 모르게 힘을 키우고 있었다. 무언갈 버텨내는 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반복한 하루들과 묵묵히 견딘 시간이 모여 몸에 힘을 만들고 방향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하우가 철봉에서 턱걸이를 해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님을 알고 있다.
하우는 이제 이유를 가진 몸으로 철봉에 매달린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매달려 있던 지난날과는 달리 내일을 바라보는 아이가 되었다. 그 비결은 거창한 결심도, 누군가의 조언도 아니었다. 그저 꾸준함이었다.
어른의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의 출근, 해야 할 일들,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가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이 책이 은근하게 건네는 위로를 떠올려보자. “성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반복된 하루를 살아내는 데서 온다.” 어쩌면 하우처럼 우리도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이유로 견디고 있는 중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일이 내일의 한 걸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그 사실을 다정하게 일깨우는 이 책은 지쳐 있는 어른의 삶에도 묵직한 한 줄을 남기는 그림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