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부른 사람들, 평화를 꿈꾼 사람들
선택의 순간에 그들은 어떤 길을 택했는가
1차대전은 6500만 명이 참전해 그중 8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10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전쟁은 역사상 중대한 전환점으로, 유럽의 여러 제국을 무너뜨렸고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역시 식민 제국으로서의 위세가 약화되었다. 또한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낳았고 도시와 농촌, 정부와 국민,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누가, 무엇이 전쟁을 초래했는가? 군국주의, 군비 경쟁, 제국주의적 경쟁과 같은 근본적인 경향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유럽을 양분한 동맹 체계는 얼마나 중요한 원인이었는가? 어떤 국가(들)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하나의 정해진 답은 없다. 여러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거릿 맥밀런은 풍부하고 다층적인 전쟁 발발 전 기록을 통해 1914년 이전 상당 기간 동안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면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맥밀런의 답변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유럽 외교 질서의 재편 과정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20세기 초 유럽 제국들과 그 지도자들이 처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살핀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의 지도자들이 각기 어떤 내적 불안과 제국주의적 야망, 보수주의적 반동에 시달렸는지를 정치·외교·문화를 넘나들며 보여준다.
다음으로 중반부에서는 발칸 전쟁, 군비 경쟁, 동맹 강화, 식민지 야욕, 민족주의의 대두 등으로 유럽이 전쟁 직전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조망한다. 이 시기 강대국들은 여러 차례 발생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사회진화론을 비롯해 퇴보에 대한 공포, 전쟁이 쇠퇴한 사회를 정화해줄 것이란 믿음이 대중 사이에 확산되면서 점점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갔다. 또한 슐리펜 계획을 비롯한 각국의 전쟁 계획은 위기 시 정치 지도자들의 결정 여지를 줄이고 위기 대응 시간을 단축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평화적 해법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는 1905년 이후 발생한 위기와 1914년 1차대전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새로 독립한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남슬라브계 주민들에게 큰 매력을 주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충돌했다. 반복되는 대립은 지도자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고, 심리적으로 유럽을 전쟁에 대비하게 했다. 이후 벌어진 여러 위기는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불만을 남겼으며,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증폭시켜 정치 지도자들이 다음 위기에서 신중하게 행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각국의 오판, 위기의식 결여, 비현실적인 낙관주의, 동맹 의무에 대한 강박이 어떻게 유럽을 전면전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재구성한다.
제국의 황혼에서 전쟁의 새벽까지
1차 세계대전으로 향한 발걸음
《평화를 끝낸 전쟁》은 당시 유럽을 하나의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파악하며, 각국의 외교 정책과 군사 전략뿐 아니라 지도자들의 성격과 세계관, 언론과 대중 여론의 흐름까지 세심히 분석한다. 마치 체스를 두듯 고도로 계산된 움직임과 때로는 오만과 착각으로 점철된 결정이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졌는지 설명하는 과정은 흡사 스릴러처럼 긴박하다. 예를 들어 동맹을 맺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독일과 인구 경쟁에서 밀리던 프랑스는 고심 끝에 거대한 인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되었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프랑스의 자본과 기술을 얻어 산업화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에 독일은 프랑스-러시아 동맹에 포위됐다고 느끼고 기존의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결속을 굳게 다졌으며, 여기에 이탈리아까지 끌어들여 3국동맹을 완성했다.
한편 독일은 해군력 확장을 통해 영국을 우호적으로 만들려 했지만 오히려 영국은 이에 위협을 느껴 자국 해군을 증강했고, 기존의 유럽 대륙 문제에서 초연하던 정책을 접고 프랑스와 협상을 맺었다. 뒤이어 영국과 러시아 간의 협상까지 성사되면서 3국협상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유럽은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의 3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3국협상이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거대한 세력권으로 나뉘게 되었다. 결국 상호 불신과 세력 균형의 긴장 속에서 높아진 전쟁 발발 위험은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고, 유럽을 1차대전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국가 지도자들과 대중이 전쟁을 정책 수단으로 받아들인 배경에는 두려움도 큰 역할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자국 내의 남슬라브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의 독립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강대국으로서의 자국의 지위가 약해질 것을 두려워했다. 프랑스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더 강한 이웃 국가 독일을 두려워했다. 독일은 걱정에 찬 시선으로 동쪽을 바라보았다. 러시아는 빠르게 발전하면서 재무장하고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빨리 싸우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영국은 평화가 지속되면 얻을 것이 많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하나의 강대국이 유럽 대륙을 지배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1914년 의사결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결정 지연에 대한 위험성 인식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콘라트는 러시아에 맞서 오스트리아 군대의 갈리치아 집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그들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 장군과 독일군을 이끈 몰트케 장군은 각각 정부에 단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의 지연이 엄청난 희생은 물론 적국에 영토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들의 책임감에 압도된 민간인들은 그들의 전문성을 신뢰하며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일례로 방어 입지를 구축한 다음 적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같은 질문도 없었다. 그래서 이웃 국가가 동원령을 발령하거나 그런 준비를 하는 조짐이 보이면, 해당 국가도 동원령을 발령할 수밖에 없었다. 즉, 하나의 조각이 움직이면 모두를 끌고 가는 흡사 도미노와 같은 구조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누가 전쟁을 원했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그 비극을 멈추지 못했는가?
전쟁 발발 책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흔히 이에 대해 당시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었던 소수의 장군, 국왕, 외교관, 정치인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 그들은 군대를 동원하거나 타협하는 데, 군대가 계획을 실행하는 데 찬성 또는 반대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왜 그들이 그런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하지만, 맥밀런은 전쟁이 일어난 것이 어느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의 잘못이었으며, 굳이 따지자면 일부 국가를 비롯해 그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1914년 세르비아를 파괴하려 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판단,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독일의 결정, 성급한 러시아의 동원,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한다. 결국 이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맥밀런은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이들의 과오는 두 가지라고 말한다.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치달을지 상상하지 못한 점, 그리고 전쟁 돌입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에 맥밀런은 말한다. “그러나 선택할 기회는 늘 있는 법이다.”
이 책에는 빌헬름 2세, 니콜라이 2세, 프란츠 요제프, 에드워드 그레이, 조프르와 몰트케, 베트만홀베크 등 전쟁을 향해 나아간 이들뿐 아니라 그걸 막기 위해 싸운 인물들의 초상도 병렬적으로 그려진다. 19세기에는 전쟁을 불법화하고 국가 간의 분쟁을 중재해 전쟁을 막는 여러 단체와 결사가 생겨났다. 앤드루 카네기나 알프레드 노벨 같은 사람들은 국제 이해 증진을 위해 재산을 기부했고, 세계의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정당들은 제2인터내셔널을 조직했다. 이 조직은 전쟁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반복해서 통과시켰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또한 국제중재재판소가 설립되면서 세계 문제를 관리하는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을 위한 기초가 한 단계씩 놓여가는 것처럼 보였다. 전쟁은 과거의 일이 되길 많은 사람이 희망했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이 같은 노력들은 결국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상호 불신, 그리고 선택의 갈림길마다 반복된 잘못된 판단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전쟁은 끝내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100여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 시대에
세계적 석학이 전하는 경고와 통찰
역사에서 불가피한 일은 거의 없다. 1914년 유럽은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고, 8월 4일 영국이 참전하기로 결정한 마지막 순간까지 전면전을 피할 수 있었다. 전쟁 돌입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던 사람들처럼 흔히 1차대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1914년 이전 유럽을 파멸로 이끈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는 우리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는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장 종교나 사회 저항 운동의 부상과 같은 혁명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있고, 중국과 미국처럼 부상하는 국가와 쇠퇴하는 국가 사이의 긴장에서 오는 것도 있다. 어떻게 전쟁이 발생하는가와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류가 만든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였던 1차대전의 전조는 오랫동안 감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불신이 쌓이며, 극단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현 시대에 이 책은 과거로의 여행이자 미래가 보내는 경고다. 즉, 이 책은 단지 100여 년 전의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쟁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왜 막지 못했는가’를 되묻는 강력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맥밀런은 단호히 말한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하려는 노력이 없을 때 일어난다.” 맥밀런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전쟁의 파국이 현실이 되기까지의 찰나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현 시대의 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깊이 성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