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씨 이야기를 하듯 일상적으로 죽음에 관해 대화했다.”
미국 문화인류학자가 수년간 존엄사 현장에서 쌓아올린
존엄사에 관한 가장 총체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서
《내가 죽는 날》은 미국 문화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이 수년간 조력 사망의 현장을 직접 동행하며 써낸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밀도 깊은 기록이다. 저자는 오리건주를 비롯해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의 환자, 가족, 의료진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법 제도 바깥에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결단, 그리고 연대의 현장을 포착한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고자 하는지, 그 결정을 둘러싼 문화적, 제도적, 정서적 측면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책에는 미국 존엄사법을 둘러싼 실제 사례들이 등장한다. 조력 사망법을 통해 가족들 곁에서 삶을 마감하는 유쾌한 90세 블루스 연주자 켄, 간호사이자 조산사였지만 은퇴 후 오리건과 워싱턴 전역을 오가며 임종을 맞는 이들을 안내하는 데리애나, 존엄사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싸우다 마침내 존엄사 자격을 얻게 되는 파킨슨병 활동가 브루스 등등. 해닉이 기록한 5년간의 뜨거운 여정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또한 첨단 의학 시대에서 죽음이라는 하나의 과정의 존엄성과 의미를 되찾을 방법을 탐구한다. 그 분투는 곧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들이 끝내려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라
결코 오래가지 못할 삶이다.”
조력 사망 제도를 통해 살펴보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삶의 마지막을 결정한 권리에 관하여
한국 사회에서도 존엄사, 조력 사망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논의는 여전히 제도와 법의 영역에 갇혀 있고, 죽음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묻히고 만다.
“존엄성을 누가 정의할까요? 죽어가는 사람이 정의해야죠. 내가 그의 존엄성을 정의하는 게 아니에요. 환자의 존엄성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뿐입니다. 만약 그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정맥주사와 카테터를 꽂고 있길 원한다면 그것이 존엄성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단순히 조력 사망을 찬반의 시각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 실제로 그 제도를 선택하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복잡한 현실(법적 요건, 경제적 제약, 문화적 낙인 등)을 세심하게 따라간다. 책 속 인물들은 온전히 결정권을 가진 채 자신의 죽음을 계획함으로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답게 존재하려 애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 삶의 ‘존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선명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나아가 책은 우리 사회가 과연 죽음을 어떻게 말하고, 대하고, 선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의료가 끝내 해결해줄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 그 고통을 견딜 것을 환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죄인처럼 보지 않고, 그 결정의 무게를 함께 감당할 수는 없는가. 존엄사법은 그들에게 무엇을 허락하고, 무엇을 가로막는가?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죄인가, 존엄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죽음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언어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