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에 빗방울 내린 날에」는 작고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사랑, 시간, 기억, 계절의 흐름을 섬세하고 담백하게 포착한 시집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미덕은 조용한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과장되지 않은 언어로 삶의 소소한 장면들을 담아내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곶감 농장, 잉꼬새, 연탄불, 커피 한 잔, 시외버스-이러한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시인은 세대 간의 정, 계절의 변화,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을 조용히 전한다. 시집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사색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을 더듬게 하고, 익숙한 일상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점이다. 고목나무에 다시 핀 꽃, 산행 중 마주한 마음의 봉우리, 여름날 타일 바닥의 물기, 새장 속의 잉꼬새-이 모든 것들이 생명력과 소멸, 기억과 현재, 상실과 회복의 은유로 작동하며,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시간의 겹을 고요히 따라가게 된다.
이 시집은 짧은 산문시처럼 흘러가는 작품이 많은데, 그 안에 담긴 담백한 리듬이 오히려 시적 긴장감을 높인다. 때로는 짧은 단막극 같고, 때로는 혼잣말 같은 독백으로 이어지는 시들은 무심한 듯 깊고, 단순한 듯 다층적이다.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삶의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커피를 따르는 손길, 아버님을 떠올리며 키우는 새, 겨울 호수 위를 떠다니는 새들의 움직임-이 모든 장면이 하나의 기도로, 하나의 추억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조용한 찬가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