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소개하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독립운동사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와 판결문으로만 역사에 남은 평범한 식민지 조선인 40인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학생, 교사, 지역 유지와 소작인, 점원, 엘리베이터 보이, 비정규직 공무원, 주부, 심지어 좀도둑까지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식민지 조선 땅에서 벌어진 일상 속 저항들. 이 작지만 결연한 저항의 기록은, 특정 영웅들의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작은 행동 역시 현재와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 식민지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 영웅이 되다
-거대 역사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독립을 위한 작은 실천과 저항의 기록
3등 대합실에서 만세를 외친 화가 신동윤부터 만세 시위를 막으려는 원주 군수를 질책한 열여덟 소년 한범우, 식민지 교육에 동맹휴학으로 저항한 학생 정동화, 3·1운동 기념 격문을 붙인 인쇄공 송병천, 잡지 읽고 각성한 농민 안천수, 총독부 앞 만세 시위를 계획한 종교인 함용환, 불온 낙서를 남긴 엘리베이터 보이 최영순, 도둑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이제국, 게다 신고 근로보국에 나선 새댁 현금렬, 축구부로 위장한 학생 비밀결사를 만든 김철용, 조선말을 쓴다는 이유로 체포된 점원 이삼철…. 독립운동사에서 지금껏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이름들이다.
이 책은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아닌 식민지 조선 땅에서 일상을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나 거대한 항일운동의 서사에서 벗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저항과 헌신에 주목한다.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에 한반도에서는 글자 그대로 "쉼 없이"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일각에서는 다수의 식민지 조선인이 일제 통치에 순응하며 살았다고 말하지만, 많은 조선인이 통제받는 식민지인의 삶과 일상적 차별 등에 분노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껏 독립운동을 실천했다.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독립운동이 특별한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제 몸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던 그들이 무엇에 분노했는지, 그 분노가 어떻게 독립운동으로 표출됐는지를 보여 주는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와 행동이 쌓여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역사적 진실을 증명한다.
"내가 만약 식민지 조선의 치안 책임자였다면 정말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책을 가져다 써도 조선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불쑥불쑥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 일각에선 식민지 조선이 점점 근대화되어 간 양상을 부각하며, 한반도에 거주한 다수의 조선인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순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을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분들의 영령이 듣는다면 코웃음 칠 거라 확신한다. 제도가 개선되고 생활 수준이 나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통제받는 식민지인으로 산다는 점이었다. …
식민지의 삶에서 불의를 느낀 사람들은 … 나이가 적든 많든, 어떤 시기든 상관없이 이런 사람들은 식민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작은 외침들은 켜켜이 쌓여 독립의 밑거름이 된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6, 7쪽)
2. 4,837장의 카드에서 찾아낸 평범한 독립운동가 40인의 이야기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와 판결문으로 재구성한 작지만 결연한 독립운동의 역사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시작한다. 이 카드는 1965년 내무부 치안국 감식계 창고에서 유관순의 수감 시절 사진이 발견되면서 처음 주목받았다. 사진의 출처는 일제시기에 제작된 6,000여 장의 카드 뭉치였다. 일제는 수형자, 수배자, 감시 대상자의 정보를 카드에 적고 사진을 붙여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잡아들이는 데 활용했다. 해방 후 한국 경찰에서 보관하던 이 카드 뭉치는 1980년대 말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되며 비로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라는 이름을 얻고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복수의 카드를 제외하고 정리된 인물 수는 4,837명에 달하며, 단순 범죄자 18명을 제외한 모두가 독립운동 관련자다.
한 뼘 크기의 작은 카드지만 그 한 장 한 장이 전하는 울림은 작지 않다. 가령 안창호는 세 장의 카드가 작성되었는데, 1925년 첫 카드와 1937년 세 번째 카드를 비교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하고 달라진 모습에 그의 12년을 감히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또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몇몇 독립운동가 외에도 4,000명이 넘은 아주 보통의 평범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불러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수많은 카드 가운데 작은 카드 한 장으로만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며 새로운 독립운동의 서사를 복원한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담긴 수형 기록과 정보를 기초로, 판결문과 수사기록, 신문 기사, 관련 연구 자료 등을 함께 살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식민지 조선의 일상 속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이 카드로, 오늘날 잊힌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생김새를 알고 새로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 광복 80주년, 오늘의 ‘광장’과 이어지는 역사
-식민지 일상 속 작은 저항에서 빛의 혁명으로
이 책을 출간하는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또한 이 책은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광장에서 벌어진 빛의 혁명을 보고 겪으면서 평범한 이들의 염원에서 나오는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느낀 시의성 있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광장의 시민들 모습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광복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뤄낸 역사”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독립에 대한 희망의 빛이 쉬이 꺼지지 않은 것은 평범한 이들의 염원과 끊임없는 저항 때문이었다. 이 책은 불의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저항해 독립을 이룬 민족의 계승자가 바로 우리라는 벅참과 함께 평범한 이들의 작은 행동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적 교훈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