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빛나는 ‘로맨스의 정수’이자
세월에 바래지 않는 불후의 고전 『오만과 편견』
“영국 소설의 정수이자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
- 서머싯 몸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에 이어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며,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작가로, 이번 빛소굴 세계문학전집으로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선보인다. 1775년 영국 햄프셔의 시골 마을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오스틴은, 현실적으로는 결혼 외에 다른 삶의 선택지가 거의 없었던 당대 여성의 처지 속에서도 문학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구축했다. 정식으로 등단한 여성 작가가 드물던 시절 오스틴은 익명으로 작품을 출간하며 점차 명성을 쌓아갔고, 생애 동안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그녀의 문학은 통속적 사랑 이야기의 외양 속에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 아이러니를 담아내며, 당대 사회의 위선과 계급의식을 정교하게 해부해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1813년에 발표된 『오만과 편견』은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고전 로맨스로, 출간 직후부터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돈 많은 미혼남에게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진리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수많은 독자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드라마·뮤지컬 등으로 수차례 각색되며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증명해 왔다. 『오만과 편견』은 세계문학 100대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BBC 조사에서는 『반지의 제왕』에 이어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책’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셰익스피어”라는 찬사까지 받는 오스틴의 문학적 성취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북클럽, 여성주의 문학 연구, 대중문화 전반에서 널리 조명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위대한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헨리 필딩과 함께
삶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훌륭한 화가들 중 하나다.” - 헨리 제임스
이 작품은 한 중산층 가정의 다섯 자매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혼과 삶을 선택해 나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특히 엘리자베스 베넷과 피츠윌리엄 다아시라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오해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재력과 신분, 사회적 기대에 얽매인 현실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상징한다. 반면 다아시는 오만하고 무뚝뚝한 인상으로 등장하지만, 점차 변화하며 사랑과 존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두 사람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심리 묘사와 주변 인물들의 다채로운 결혼 양상을 통해 오스틴은 당대 영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경제력에 기초한 결혼을 택한 샬럿, 경솔한 선택으로 사회적 위기에 처하는 리디아, 단단한 우애와 신중함을 지닌 제인 등의 캐릭터는 현실적인 감각과 통찰을 작품에 더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제목인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 단순히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전 서로에게 가졌던 왜곡된 인식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서 또 다른 형태의 오만과 편견에 빠져든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며, 나아가 그 사랑 앞에서는 세상의 시선조차 무의미해지는 일종의 감정적 확신이다. 이처럼 사랑이 우리 안에서 만드는 오만과 편견은 결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사랑에 빠질 때 경험하게 되는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착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착시를 끝내 삶의 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강력한 매혹이다.
『오만과 편견』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출발점이자, 여성 서사의 진정한 고전으로 읽힌다. 사랑을 중심에 두되 결혼이 여성에게 어떤 현실적 선택이었는지를 직시하고, 다양한 결혼의 모습과 그에 대한 인간적 반응을 통해 보편적인 삶의 고민을 묘사한다. 유쾌한 대사, 통찰력 있는 내면 묘사, 그리고 풍자적인 문체는 이 작품을 단순한 연애담이 아닌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끌어올린다.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해럴드 블룸) 제인 오스틴의 시선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오만과 편견』은 독자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자아와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선물한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200년의 시간 차를 넘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