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위기와 피조물의 고통을 향한 새로운 신학적 응답
기후위기와 생태 대멸종은 더 이상 암울한 추산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는 생존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와 신앙은 단순한 위로나 내세적 희망을 넘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응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깊은 육화-피조물의 고통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은 이러한 질문의 실마리를 ‘깊은 육화’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저자 데니스 에드워즈는 육화신학의 역사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며, 초대 교회의 교부들부터 현대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육화신학의 흐름을 추적하고 통합한다.
에드워즈는 이레네우스, 아타나시우스, 칼 라너를 “온전한 육화신학을 펼친 위대한 증인”으로 제시하며, 각 시대가 직면한 과제 속에서 어떻게 육화의 의미가 심화해 왔는지 추적한다. 이레네우스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개념에서 시작해, 아타나시우스의 ‘신화(神化, deification)’ 사상 그리고 라너의 진화론적 세계관과 결합한 육화신학까지, 저자는 각 신학자의 핵심 통찰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에드워즈가 이들의 사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태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전통 신학과 현대적 과제를 창조적으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천 년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관통하는 육화신학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21세기에 걸맞은 생태신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변곡점이 되어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의 근본적인 충만함이시며, 자신을 비워 피조물의 세계에 내주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 초월성에 관한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깊은 육화》의 독창성은 전통적 신학 개념들을 지금의 생태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데 있다. 특히 닐스 그레게르센이 제시한 ‘깊은 육화’ 개념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육화신학이 어떻게 피조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우주론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말씀이 살이 되셨다”는 전통적인 육화 이해는 대체로 인간 본성과의 결합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육화가 단순히 인간 개별성과의 결합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 과정 전체, 나아가 방대한 우주적 현실과의 연결점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총괄갱신은 단순히 타락한 인간성의 회복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치유와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또한 자기비움(kenosis) 개념은 그리스도가 단순히 신적 특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생태계의 상호연결성 속에 온전히 참여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재해석은 기존 신학의 전통성과 풍부함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천문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과 생태학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에드워즈가 《깊은 육화》를 통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넓은 자연 세계, 은하계와 별의 우주, 산과 바다, 박테리아, 식물과 동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신학적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생태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실존적 과제다.
기존의 인간중심적 신학이 환경 문제를 충분히 성찰하지 못해왔다는 비판 앞에서, 에드워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육화 사건 자체가 피조세계 전체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육화가 인간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치유와 완성을 위한 하느님의 행동이라는 이 같은 신학적 통찰은 그리스도교 환경 윤리에 새로운 기초를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이 제시하는 ‘깊은 육화’라는 개념은 피조세계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 요구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