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한 번도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정치책은 의외로 많다. 저마다 승리의 비결을 아는 듯 훈수를 두지만, 정작 개표 방송 화면에 ‘‑8.27 %’가 찍힐 때 느껴지는 서늘한 현기증을 문장으로 옮긴 책은 드물다. 《이기는 보수》는 그 결핍에서 태어났다. 저자 조정훈은 새벽 1시 여의도 지하 주차장에 내려앉은 정적을, 흉터처럼 번지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패배를 증언하는 전광판의 붉은 잔광까지 모조리 기록했다. 뼈저린 성찰은 그런 뒤에야 시작된다. 득표 곡선이 주저앉은 시각, 계파가 서로를 겨눈 회의록, 국민이 버린 서사의 빈칸을 분 단위로 되짚어 가며 그는 “패배는 누구 탓도 아닌, 전략적·윤리적 게으름의 합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책이 탁월한 대목은, 절망을 슬로건으로 치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당신들이 뭘 몰랐는지 내가 알려주겠다”는 흔한 자화자찬 대신 ‘직시 → 교훈 → 재건’이라는 세 단어만을 내세운다. 통계와 서사를 맞물려 만든 혁신 로드맵, 실패 방지 경고표, 즉시 실행 체크리스트는 자랑이 아니라 처방이다. 더 멀리 보자면, 그것은 “명확한 메시지·국민 공감·조직 결속”이라는 상식조차 지키지 못했던 과거와 완전히 절연하겠다는 선언이다.
프롤로그가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는 문이라면, 에필로그는 미래를 여는 창이다. 저자는 ‘질서·책임·연대’라는 낡은 세 단어를 미래영향평가·재도전 인프라·세대 간 계약으로 번역해 청년과 중도,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갖지 못한 다음 세대에게 건넨다. 정치가 다시 사람을 믿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이 책이 품은 진정성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기는 보수》는 기존 정치 서적이 빠지기 쉬운 ‘영웅담’이나 ‘타인 비난’의 늪을 단호히 비켜선다. 이 책은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패배가 남긴 파편을 주워 손전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을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들자고 제안한다. 패배는 밤에 오지만, 서로를 비출 때 길은 남아 있다. 이 책이 전하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차갑게 정제된 경험은 정치라는 긴 밤을 걷는 모든 이에게 가장 믿을 만한 등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