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연금술?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지식 체계로서의 연금술
돌과 쇳덩이를 금으로 바꾸려고 기상천외한 물질들을 혼합하는 연금술사의 이미지는 종교재판을 받고서 “그래도 세계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던 갈릴레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목격하고 중력을 발견했다던 뉴턴처럼 거짓된 이미지다. 연금술은 일찍이 고대부터 ‘지식 체계’였다.
첫째, 연금술은 무엇보다 정교한 기술이었다. 고대 파피루스에서 복원한 초기 연금술 기법은 250여 가지에 달하며 금, 은, 보석에 관한 기술과 섬유 염색술이 담겨 있다. 어찌나 그 기술이 정교했는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금과 은의 연금술에 관한 이집트인의 책을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을 정도다. 현대 화학자들은 이 시기 연금술의 기법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기도 하는데, 한 예로 “석회, 한 움큼, 미리 갈아 둔 황, 같은 양으로. 이것들을 그릇에 같이 넣는다. 독한 식초 혹은 어린이의 오줌을 가한다. 액체가 피처럼 보일 때까지 그릇 바닥을 가열한다. 침전물을 거른 후 그대로 사용한다”라는 기록에 따라 만든 액체 속에 연마한 은 조각을 넣으면 얇은 황화 은 막이 형성되면서 금속 조각의 색이 변화하고 적절한 시간 동안 담그면 정말로 은을 금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21쪽)
둘째, 연금술은 무엇보다 치밀한 물질 이론이었다. 예를 들어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스테파노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신플라톤주의, 그리스 자연철학, 초기 기독교 사상과 더불어 당대의 의약학 지식까지 섭렵하여 이를 연금술이라는 자장 아래에 모아 물질 세계에 대한 확고한 설명 체계를 확립하고자 했다. 막연히 신비적이고 마술적이라고 생각했던 연금술은 사실 고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 설명 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연금술이 발흥한 이슬람에서는 라틴식 이름 게베르로 잘 알려진,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독특한 금속 변성 이론 체계를 세웠는데 그가 제시한 금속의 수은-황 이론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아리스트텔레스의 4원소설을 원용해 수은-황에서 순수한 1차 성질 물질을 뽑아낼 수 있고 이런 1차 성질 물질을 조합해 만든 작용제인 엘릭시르가 금속을 금으로 변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 실험 절차에 대해서도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런 기록은 당대와 후대의 연금술사를 자극해 많은 비판과 논쟁을 낳았으며 물질을 다루고 실험하는 방법과 이론 체계를 점점 발전한다. 이는 정확히 ‘과학의 과정’이며 연금술의 기법과 체계는 18세기 이후 화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뿌리부터 시작해, 이슬람, 중세 유럽을 거쳐 과거의 화학, 연금술이 정말로 어떤 활동이었는지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에게는 신비적으로 들릴 뿐인 ‘현자의 돌’, ‘제5원소’ 같은 연금술의 개념들은 종교나 신화에 기댄 망상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관찰, 용해와 정제 같은 정교한 실험 과정을 통해 도출된 ‘과학적 개념’이다. 이미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연금술 책, 《완전성 대전》에는 현대의 원자에 대응하는, 물질의 성질을 띤 작은 ‘입자’ 개념이 등장한다. 따라서 과학 혁명이라고 일컫는 근대 과학은 연금술과 결별한 것이 아니라 연금술에서 이어진 것이다.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과 근대 과학의 거인 아이작 뉴턴은 완벽한 연금술사였다.
연금술과 화학은 한 번도 단절된 적 없다
완벽한 연금술사, 보일과 뉴턴
보일의 법칙을 발견한 로버트 보일은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세계를 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꾼 근대 과학의 거인이다. 그리고 이 둘 다 완벽한 연금술사였다.
보일은 연금술을 부정하고 합리적 화학을 시작한 과학자가 아니다. “보일이 제시한 원자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선배 연금술사의 논의를 확장한 것이었다.”(67쪽) 중세 연금술을 대표하는 가짜 게베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원용하여 그의 4원소가 최소 입자를 이루며 이들이 결합해 황 입자와 수은 입자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이후 연금술사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는 연금술 실험은 입자를 분리하고 결합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세상을 작은 입자가 구성하고 있다는 원자론은 고대부터 16~17세기까지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의 주의를 끌었으며 그 사상적 표현이 바로 기계론 철학으로 발흥한 것이다. 역시나 물질의 구성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보일은 세상이 제일자연이라는 가장 작은 입자에서 시작해 조금씩 더 큰 입자로 계층적 체계를 이룬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생각은 모든 원자가 같은 재료로 구성되어 있기에 “은 입자를 쪼갠 후 다시 조립해 금 입자로 만들 수 있다”(76쪽)는 연금술적 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화학의 아버지 보일은 금 변성을 계속 시도했다!
뉴턴은 금속의 변성, 의약품 만들기, 광물을 분류하고 추출하기 등 연금술의 모든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노트에는 연금술 이론에 관한 기록이 빼곡하다. 그럼에도 근대 과학을 상찬하는 신화 만들기에 빠진 사람들은 뉴턴과 연금술의 연결고리를 지워버리고자 했다.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뉴턴이 그저 취미로 연금술을 했을 뿐이며 연금술은 그의 과학적 작업과 본질적으로 무관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턴에게 연금술은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그저 과학이었다. “일례로 뉴턴의 연금술 노트 가운데에는 빛을 가지고 수행한 실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흰색 빛이 사실 여러 색의 빛이 합쳐진 혼합물이라는 발견이 여기서 최초로 언급됩니다. 뉴턴은 연금술의 분석과 합성 기법을 흉내 내어 빛을 분리한 후 다시 합치는 실험을 수행해 이로부터 빛의 색은 바뀔 수 없고 그저 서로 섞임으로 다른 색을 만들게 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즉 뉴턴에게 있어 광학은 연금술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에게 광학 실험은 빛의 연금술이었던 것입니다.”(86쪽)
화학 혁명의 발발, 주기율표의 탄생까지
그러나 여전히 연금술이라는 거울상을 가진 화학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이 등장한 이른바 ‘화학 혁명’ 이후 연금술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사이비의 이미지를 뒤집어쓴다. 화학의 실험은 개선되고, 숫자로 된 데이터가 등장하며, 우리가 익히 아는 화학 명명법이 고안된다. ‘이름 짓기’와 ‘수학화’라는 외피를 얻자 화학자는스스로를 연금술사와 구별한다. “1737년 의사이자 화학자인 아브라함 카우Abraham Kaau(1715-1758)가 레이덴 대학교에서 ‘연금술사들의 기쁨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는데 그 연설에서 연금술은 ‘우둔함의 상징’이요, ‘과거의 유물’이며, ‘조롱의 대상’으로 언급됩니다. 이후 연금술이라는 이름은 학문 세계에서 터부시됩니다. 이 시기의 화학자들은 화학에 합리적 과학의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연금술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결국 그들은 성공했습니다.”(92-93쪽) 이 책의 3부부터 6부, 다시 말해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친화력’이라는 개념의 등장부터 과학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기율표’의 탄생을 다루는 장들은 화학을 만든 수많은 과학자와 사건들을 숨 가쁘게 추적하고 그 이면에 놓인 연금술적 전통을 끌어낸다. 조프루아, 라부아지에, 토르베르 베리만, 베르톨레, 프루스트, 돌턴, 게이뤼삭, 아보가드로, 베르셀리우스, 리비히, 뵐러, 뒤마, 케쿨레, 멘델레예프까지 현대 화학을 정초한 수많은 주인공은 물질의 ‘구조’를 파헤치고 이에 따라 원소의 독특한 성질을 분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860년대 말, 주기율표의 탄생은 젊은 화학자 세대가 원자와 분자를 정의하고 질량 분석법을 통해 각 원자의 원자량을 결정하며 구조 이론을 통해 원자들이 맺는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래서 이제 연금술의 쓸모는 수명을 다했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화학자들은 해결되지 않은 근본 문제를 두고 서로 갈라진다. 바로 원자가 ‘실재’하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누군가는 원자가 실재함으로 화학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누군가는 원자 개념 없이도 화학을 재구성할 수 있으므로 그 개념을 폐기해야 한다고 맞선다. 그 중간에는 원자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그 개념은 유용하니 지식의 증진이라는 성과를 낸다면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 화학을 이끈 바로 이 ‘실용주의’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연금술의 자장 아래 있다. 연금술사는 금속의 변성을 설명하기 위해 현상을 풍부하게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편견 없이 가져다 쓰고 혼합하고 발전시켰다. “이슬람과 유럽의 연금술사는 서로 경쟁하는 여러 연금술 이론을 만들었고 한 이론이 다른 이론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채 각축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열매가 맺혔죠. 이를 두고 연금술사의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286쪽)
지금도 화학의 상태는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화학자는 원자의 실재성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으며 화학 결합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에 기반한 이론은 매우 복잡해 기초적 수준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에 현대 화학자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사용한다. 화학은 여전히 연금술의 실용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연금술사는 과거의 화학자이고, 화학자는 현대의 연금술사입니다.”(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