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흔적이 현재나 미래의 수공 후배들이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사를 집필할 때에 참고가 되었 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남기게 되었다. 이 글은 수공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사내외에서 했던 강연과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내용, 신문 잡지 인터뷰의 기사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내가 1989년 3월 수자원공사 제5대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는 25개 국영기업체 사장 중에서 유일한 민간기업 출신 전문경영자였다.
당시 4성급 군 장성이나 장관급 고위관료 출신이 아니면서 민간전문 경영인인 내가 수자원공사 5대 사장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 때 황태자로 평가받던 박철언 장관과 그의 핵심참모였던 염돈재 안기부 차장, 박원출 보사부차관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파격적인 인사였다. 이 자리를 빌어 이분들의 추천과 성원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중앙일보 정치부 청와대 출입기자,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등 민간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생소한 공직사회를 접하면서 수자원 공사의 임직원들이 정말 순수하고 인간미가 넘칠 뿐 아니라 자질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물을 다루는 인재들이라 그랬던 것 같다. 반면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공기업 특유의 비전부재, 안일무사, 연공서열중심의 인사 등 공무원 사회의 단점과 민간기업의 나쁜 점을 고스란히 합쳐놓은 것 같은 조직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사장에 취임하고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수공의 사풍을 혁신,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공사의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최우선 과제로 과감한 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비전과 철학, 철저한 의식혁명, 공정한 인사 등을 통하여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앞서 가는 수자원공사운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영혁신운동에 착수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이 운동 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명칭을 “MIND 90운동”으로 변경했고, 내용 과질 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본격적인 경영개선운동으로 추진되었다.
이 경영혁신운동은 짧은 기간에 실로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사장 취임 당시 25개 국영기업체 경영평가에서 23위로 바닥을 맴돌던 수자원공사를 3년만에 당당히 최우수 기업으로 올려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장인 내가 솔선수범하면서 쉽고, 간단하고, 가시적인 일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기 시작하자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25개 국영기업체 경영평가에서 정상(1위)을 정복한 여세를 몰아 수자원공사는 3년 연속 노사협조 모범기관, 정부시책 홍보모범기관으로 선정되어 부총리 표창을 받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한국능률 협회로부터 한국산업교육대상 관리교육상을, 모교인 경북사대부고 동창회로부터는 “자랑스런 군성인(郡星人)”으로 뽑혔고, 마지막은 수
공 사장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 쌀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자리에서 먼 훗날 수공의 역사를 집필할 후배들을 위해 몇 가지 밝히고 싶은 사실이 있다. 내가 사장에 취임할 당시 회사의 위상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본사 사옥이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나는 공사의 위상제고를 위해 본사 건물 증개축을 지시했다. 그 결과 현재의 본사 사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공기업으로서 연수원과 연구소가 없는 수자원공사를 지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당시 수공의 연수원은 대청댐 근처 허허벌판에 있던 초라한 가건물이었다. 나는
토지공사 사장과 협의,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부지를 특별히 분양받아 오늘날의 연수원과 현대적인 수리모형시험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일은 한전과의 전기요금 협상 때마다 우리 간부의 직급이 한전보다 낮아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하였다.
그때 한전은 우리의 부장급인 처장이란 직급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장급이 최상위 실무자였다. 나는 건교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전과의 전기요금교섭상의 애로사항을 설명하여 수공 직원들의 직급을 한 단계 상향조정하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 일을 계기로 건교부 산하 토공, 주공 등 공기업 직원들의 직급이 모두 한 단계씩 상향조정되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지금의 처장제도는 그때 탄생한 직급이다.
이 밖에 유엔이 ‘세계 물의 날’을 제정하기 이전인 1990년에 매년 7월 1일을 ‘물의 날’로 제정·선포한 일, 굴포천 방수로라는 이름으로 착공한 경인아라뱃길, 수도권 광역 상수도의 복선화 및 LOOP화, 수자원공사법을 개정하여 광역 상수도 운영관리권과 공업단지조성사업의 계속성 및 특수지역 개발사업권을 확보한 일들이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