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진영화 구도가 심화되면서 오랫동안 소원했던 러시아와 북한 관계가 복원 수준을 넘어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전쟁에 파병까지 하는 혈맹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통해 현대전 능력을 배양하고 있고, 러시아의 지원으로 재래식 전력도 증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2022년 4월경부터 전술핵무기를 전방에 배치하고, 대남 핵 사용 훈련까지 감행하며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한편,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강대국 정치가 부활하면서 과거에 미국이 구축한 ‘규칙 기반 자유주의 질서’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주한미군도 대중 견제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이고, 북한의 위협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면서 자강력(自强力)을 시급히 강화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는, 국제정치에서 현상 타파 세력의 도전에 맞서 이를 견제(balancing)하는 것은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견제가 적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궁극적으로 오류에 취약한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랜들 슈웰러(Randall Schweller) 역시, 국가 간 역학관계가 변화하더라도 시계 톱니바퀴처럼 각국이 즉각적으로 견제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그 타이밍이 지체되어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경고에 동의하면서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은 남북한 핵 균형 실현을 통해 한반도에서 북한의 오판에 의한 핵전쟁을 예방하고, 미래세대에게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강국’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총서를 기획하게 되었다. 포럼은 내년 상반기까지 총 네 권의 총서 발간을 통해 한국이 핵잠재력 확보를 거쳐 궁극적으로 자체 핵 보유까지 나아가기 위한 길을 이끌 새로운 핵안보 담론과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러 기관에서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핵자강(자체 핵보유)에 찬성하는 한국인의 비중은 70% 이상을 차지하고, 핵잠재력 보유에 찬성하는 비중도 80%에 육박한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보수진영의 과도한 환상과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헛된 기대를 가져온 ‘레거시 핵정치 양대 담론’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5년 현재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총서 집필에 약 50명 정도의 국내 및 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들은 전문성, 명망, 경력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전·현직 대학교수, 싱크탱크 연구위원, 고위급 외교관, 예비역 고위 군 간부, 정부 관료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전공 분야는 국제정치, 국제법, 지역학(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중동, 중남미 등), 군사학, 리더십, 핵공학, 방호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내 전문가들은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넘어서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초당적 협력의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 호주 국적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대주제를 가지고 50명 내외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전무후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핵안보전략포럼 편집기획위원회는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총서에 들어갈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고, 필자들 간의 시각 차이를 좁히기 위해 너무나도 뜨겁고 길었던 2024년 여름 내내 수십 회의 화상 및 대면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이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해 운영되는 민간학술단체이기 때문에 필자들에게 일절 원고료를 지급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염려하는 애국심 하나로 총서 집필과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모든 필자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에 출간된 1권에서는 한국의 자체 핵보유 필요성과 추진전략, 핵잠재력 확보 문제 등이 논의된다. 1장에서 이성춘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이 실제적일 수 있음을 북한 관련 1, 2차 문헌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2장에서 권용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실증적 데이터와 수치해석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3장에서 박범진은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의 허와 실을 논의하고 있다. 4장, 5장, 6장에서 송승종, 최승환, 김지용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의지와 능력의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7장에서 이대한은 인구절벽 문제가 국가안보 위기라는 점을 환기하면서 극복방안으로 핵자강을 제시하고 있다. 8장에서 전진호는 일본 수준의 핵잠재력 확보를 위해 한국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에서 문근식은 핵추진잠수함 확보가 미국의 승인 없이도 가능한 현실적인 대북 억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10장에서 정경영은 핵자강이 전작권 전환과 병행될 때 가장 선순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이대한은 한국의 단계적 핵무장 추진 전략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이어 출간될 총서 2권에서는 한국의 자체 핵보유에 대한 국제사회 설득 방안과 초당적 협력 과제 등이 다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발간될 총서 3권에서는 핵전략과 핵지휘통제체계가, 4권에서는 핵잠재력과 핵잠수함 주제가 깊이 있게 검토될 예정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공직 경험 없이 역사를 기록하는 학자들을 보았다.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는 공직자들도 보았다. 전자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너무 단순화시켜 일반적 원인만을 찾으려 하고, 후자는 모든 일이 특수한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잡고 있는 밧줄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둘 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총서에 참여한 약 50명의 필자가 학자뿐만 아니라 외교와 안보 분야의 전직 공직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네 권의 총서 발간으로 한국의 핵자강 담론이 기존의 ‘레거시 핵정치 양대 담론’을 넘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주류 안보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의 안보와 미래를 걱정하는 학자, 전문가, 정부 관계자, 언론인, 학생 모두에게 유익한 한반도 안보 지침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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