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길을 물어 리더로 거듭나다
한비는 기원전 280년 한나라의 임금 안의 서자로 태어났다. 그는 진나라의 재상을 지낸 이사와 함께, 성악설의 창시자이자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다. 한비가 주장하는 사상의 핵심은 ‘법술’이다. 한비보다 먼저 법가에 속하는 학자와 정치가로는 진나라의 상앙과 한나라의 신불해 등이 있었다.
한비는 상앙이 주장한 법과 신불해가 주장한 술을 종합하여 ‘법술’이라는 이론을 완성하였으며, 법술만이 국가통치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다. 한비는 법에 대하여 “명군이 다스리는 나라에는 책이 소용없고 법 그 자체가 가르침이 된다”고 정의하였다. 또한 술에 대해서는 “술이란 군주가 가슴속에 간직하고 이것저것을 비교한 후, 보이지 않게 신하를 제어하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옛 군주들이나 현대의 리더들이 ‘대놓고’ 〈한비자〉를 읽거나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보이지 않게 신하(부하)를 제어하는 기술’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 기술이라는 것도 인간의 선하고 악한 심리를 꿰뚫어, 약하거나 강한 부분을 ‘교묘하게’ ‘비정하게’ 이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법, 술, 세로 다스리는 부강한 나라
“악양은 과인을 위하여 자기 아들의 살까지 먹었다”
“악양은 자기 아들의 살까지 먹은 사람인데,
다음에는 누구인들 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한비의 법가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조국인 한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거듭 발전했다. 약소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정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한비자〉는 한비가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지는 ‘오두편’ ‘현학편’ ‘고분편’ 포함하여 총 5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고분편’의 ‘고분’이란 ‘외롭고 괴롭다’는 뜻으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고 괴롭다’는 의미이다. 한비는 비록 왕손이지만 서출로 태어나서 외로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고, 그만의 진실을 품고 펼치지 못하고 있었으니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 진실이란 것이 바로 법과 술에 의한 정치이론이다.
그런데 임금을 둘러싼 고위직 중신들은 그 법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여기면서 외면하였다. 그래서 한비는 울분을 품고 그들을 수시로 규탄하였는데, 따라서 ‘고분’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한비의 비통한 마음과 뭉클한 생애가 깃들어 있다
한비자의 법치국가 철학은 크게 보면 첫째, 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둘째, 백성과 신하에게 휘둘리지 말고 셋째, 현명한 사람을 등용시켜 능력 없는 권세가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법, 술, 세’를 이용한 통치방법이 촘촘하게 더해졌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책 〈한비자〉
진나라 왕 영정은 〈한비자〉를 읽고 감탄하여 그를 진나라로 오도록 하였는데, 객경의 자리에 있던 이사가 존재의 위협을 느끼고 모함하여 한비는 죽임을 당하였다. 영정은 한비를 죽였으나 후일 진시황이 되어 한비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법치를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촉한에서는 제갈공명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게 〈한비자〉를 숙지하도록 유언하였다. 제갈공명이 그 많은 경전과 고전 중에서도 유독 〈한비자〉를 권한 이유는 책 속에 법치와 술책을 통해 세력 있는 신하들을 통제하는 강력한 통치술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사회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과 태평양 건너 대륙은 물론 한국에서도, 성공한 정치가나 사업가들은 이 책을 즐겨 읽는다. 다만 애독하면서도 감출 뿐이다. 2500여 년 가까이 군주와 리더들의 필독서, 교과서로 읽혀온 〈한비자〉. 그 분명한 이유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