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운의 시집 『비탈에 대한 묵상』은 제목에서부터 이러한 ‘기울기’를 감지케 한다. 비탈은 곧 경사이고, 경사는 삶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 공간이다. 하지만 이 경사는 단순히 불안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균형의 조건이며, 시적 사유의 시발점이다. 비탈은 곧 존재의 태도다.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중심을 되묻는 자세.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는 바로 그 ‘기울기의 시학’에 있다.
시란 결국 언어의 실험이며, 새로운 세계 인식을 위한 형식적 시도다. 한성운의 시는 그 형식 실험을 경건한 언어로 치환하며, 독자에게 삶의 내밀한 균형을 재조정할 것을 요청한다. 그의 시에는 형식적 과시나 수사의 번잡함이 없다. 대신 단정한 문장, 조용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본 자’의 말이 있다. 그의 문장은 언어의 끝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자리, 즉 고요한 삶의 저편에서 건너온 목소리처럼 들린다.
『비탈에 대한 묵상』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애가 경사진 삶을 어떻게 견디고, 그것을 어떻게 문장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시적 기록이자 존재론적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