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이라는 감각의 미학과 윤리를 제시하고 있는 이 시조집 〈수묵의 노래〉는 형상성과 정신을 담고 있다. 수묵화처럼 절제된 색채, 여백의 깊이, 농담의 번짐을 닮은 시적 형식은 각 시에서 슬픔을 감싸고 정화하는 윤리적 시선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는 피와 죽음의 기록이 아닌,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방식의 노래로 읽히며, 시인의 시조는 통곡이 아닌 낮은 숨결처럼 조용히 독자에게 번져갈 것이다.
사설시조의 현대적 계승과 해석을 담담히 하고있는 시조들은 정형을 탈피하면서도 시조의 운율적 기억과 서정적 밀도를 놓치지 않는다. 전통적 사설시조의 풍자와 민중성은 잔잔한 서사로 대체되었지만, 정서의 누적과 감정의 곡선은 사설시조 고유의 힘을 계승하고 있다. “제주 동백”에서 “서귀포 유채꽃”으로, “영주산”에서 “섶섬”으로 이르는 구성은 공간의 순례이자 영혼의 사계절을 그리는 내면 여정이다.
기억의 시학, 제주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제주4·3과 섬의 상흔을「백비 앞에서」, 「제주 동백」, 「봉개동 序文」, 「섯알오름 바라밀다」에서 역사적 고통을 개인의 고백과 묵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즉 직접적인 서술 대신 비문, 꽃, 바람, 날짐승 등의 매개를 통해 고통의 응시 대신 통과와 화해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수묵水墨의 노래」는 제주라는 섬의 상처와 숨결을 수묵의 언어로 그려낸 기억의 시조화이다. 고통의 기록이 아닌, 기억의 숨으로 피어난 이 연작은, 사설시조의 현대적 정수이자 시인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끝끝내 말하려는’ 윤리적 행위의 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