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준은 의사이다. 그것도 외재적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고래로 양·한방 가릴 것 없이 의학은 철학·문학·미술·음악 등과 함께 ‘art(예술)’의 한 분야였다. 다시 말하자면 병이나 상처를 고치는 단순한 기술(medical technique)에 국한시키지 않고 예술의 한 방편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첫 시집도 기술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표제 ‘흰 가운의 무게, 그리고 꿈’은 그가 생업으로 삼게 된 의사로서의 무게에 짓눌리고 짓눌리면서도 의사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때 외쳤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꿈뿐만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품었던 꿈을 실현할 것을 끝없이 희구한다. 공식 상으로 기술해 보면 무게=꿈 또는 무게-〉꿈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일종의 갈망 승화 과정이다. 제1부 ‘아픔과 같이한 시간들’ 편에 실린 「흰 가운의 꿈」’과 「의사의 시작」’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만의 대표적인 몸부림이다.
부제(部題)처럼 ‘아픔과 같이한 시간들’은 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 절단술을 했던 첫 수술, 반복되어 온 수술실에서의 사투, 죽을 만큼 아프고 나야 죽게 되는 퇴행성 관절염, 사망한 채 구급차에 실려 온 DOA(Death On Arrival), 극복하기 어려운 환자의 고통과 시련, 그리고 허다한 죽음... 마침내 그가 남긴 일성은 「놓아주는 용기」였다.
죽음에 다다르게 만든 가해자일수도 있는 의사로서 ‘놓아주는 용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또다른 용기다. 떠나는 자에겐 생의 끝은 종말이 아니라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그러니 이제 아무 고통 없는 따뜻한 빛으로 나아가라고, 그러면서 남은 자에겐 망자와의 인연, 곧 억지로 이어지고 기계에 묶였던 관계를 털어내라고 조언한다. ‘억지’가 내재된 심적인 관계성이라면 ‘기계’는 드러난 물적인 관계성이다. ‘사랑이란/ 때로는 놓아주는 것. 눈물로 묶지 않고/ 기도로 풀어주는 것’.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 시구는 철인(哲人)의 금언 같다. 시구에 담긴 교훈은 명징하다. 떠나간 영혼에게 보내는 위무로는 남은 자의 눈물 따윈 소용 없다는 것이다. 기도만이 놓아줌이요, 고요한 귀환이요, 고통에서의 해방이 된다. 죽은 영혼은 마음으로만 교감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놓아주는 용기는 남은 자의 몫이다. 숱하게 죽음을 목격해온 의사로서 망자의 영혼을 달래주면서도 유족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인술의 확장된 범위를 몸소 보여주는, 참으로 가슴 따뜻한 시다. - 신완섭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