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에 내포된 복잡성은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며 흥미롭다
저자는 먼저 ‘그리고’와 ‘역사’와 ‘연극’의 사전적 정의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연극과 역사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리고’가 그 사이에서 해내는 역할에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언뜻 달라 보이는 연극과 역사는 ‘실천’이라는 지점에서 중첩되며, 역사와 마찬가지로 분석하거나, 발굴하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또는 전시함으로써 연극을 실천할 수 있으며, 연극 역시 훈련하고 리허설하고 인용하는 관행을 통해 필연적으로 과거를 다루고 보존한다.
역사란 진정성, 진실의 재구성이며, 따라서 연극이 역사를 가진다는 것은 무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진실의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연극 무대의 진실이란 본질적으로 거짓의 진실, 진정성 없는 것의 진정성이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저자는 사전적 개념만으로는 정확함과 전정성이 초석이 되는 역사와 연극은 반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연극 예술가에게 역사가 주는 것, 역사가에게 연극이 주는 것
저자는 단순히 역사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지식을 장착하는 것만으로도 ‘연극’이라는 작업을 충분히 심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업으로서의 연기에 대한 반연극적 편견들, 방탕함이나 불순함 사이의 역사적 연관성을 이겨내는 방편이 되어주기도 하고, 시간을 거듭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가운데 무대를 채우도록 돕는다. 연극 예술가에게 ‘역사’는 무대에 출몰하는 거대한 유령과 같아서 그것을 만날 준비를 미리 하는 편이 좋다.
역사극에서 공연하는 사람은 연극 예술가이지만, 공연 관행의 구성적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그 공연자가 반드시 역사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연극 또는 공연 예술가가 ‘구술 역사’를 명시적으로 공연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과거에 대한 기록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구술 역사 문서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더라도, 그 배우가 반드시 역사가이거나 구술 전승 공연이 역사적 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대와 일상생활에서의 공연 실천들을 연구하는 것, 그리고 역사 이야기들을 만들고 이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들 공연 실천들이 종종 매우 복잡하게 겹쳐지는 양상을 연구하는 것은 교차 시간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연극’과 ‘역사’가 같지 않다면, 혹은 생각, 행동, 느낌의 집합체와 상이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연극과 역사는 분명 서로를 통해 말한다. 연극에서 생각이 감정의 반대가 아니라 감정의 전달자라면, 역사에서 감정은 이념의 반대가 아니라 이념의 전달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연극 역사를 공부하는가?
연극 및 공연 예술가가 역사가라는 주장이 역사가가 연극성의 조달자라고 하는 주장보다 더 이상하지는 않다. 결국 연극과 공연은 실제의 순회하는 삶을 구성하며,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났을지 모르는 무엇이 때로는 다른 시점에 급진적으로 위장되어 다시 나타난다. 연극은 살아 있다. 사물, 기호, 기호의 기호 등의 시간적 이동은 연극 무대라는 예기치 못한 곳에 역사를 끌어올릴 수 있다. 저자는 역사성과 연극성이라는 커플은 그들의 아이들을 둘로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매일 새로운 아이들이 동일성이 차이로, 차이가 동일성으로 다시 발생하는 곳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저자 슈나이더는 연극이 역사와 같은 방식으로 진실을 드러내고 역사가 연극과 같은 방식으로 공연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진실 전달과 연극의 거짓 스토리텔링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깨려고 한다.
독자들은 역사로서의 연극과 연극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짤막한 이 책을 통해 ‘연극’과 ‘역사’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왜?’에 도달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연극도 역사도 연극사도 아닌 ‘연극 그리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