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죽음의 도약”은 무엇을 남겼는가
한국인의 눈으로 질문하다
이 책은 일본이 본격적인 근대화의 길로 나아간 1853년 ‘페리의 흑선’ 등장부터 메이지 유신, 제국주의 팽창, 전쟁과 패망, 그리고 전후 복구와 한일 국교정상화까지 100년 일본의 질주와 변모, 몰락을 추적한다. 저자가 이 역사를 바라보는 렌즈는 명확하다. 일본은 단지 서구 열강의 외압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국가의 전환점으로 삼아 능동적으로 ‘도약’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른바 “죽음의 도약”이었다.
하지만 이 도약은 동아시아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조선의 식민지화,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침략 전쟁,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거사 갈등까지.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의 도약을 찬탄하거나 규탄하기 이전에, 그 선택의 구조와 동력을 냉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어떻게 세계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감지하고, 스스로 체제 전환을 이뤄내며, 급기야 동아시아의 지배자로 부상했는지를 박훈 교수는 차분하면서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단순한 일본사 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사’다. 저자는 일본을 통해 조선(한국)을 본다. 이 책은 비교사적 관점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선택이 어떻게 달랐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원군의 개혁과 메이지 유신, 김옥균과 이토 히로부미, 강화도조약과 일본의 통상조약의 차이를 보여주며 단지 역사적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를 마주할 때 무엇을 보고, 어떻게 결정하느냐라는 본질을 묻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메이지 유신부터 일본제국의 패전까지
일본 근대를 통째로 꿰뚫다
책의 1부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길〉은 페리 제독의 개항 요구부터 메이지 유신의 완성까지를 다룬다. 일본이 외세의 충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조정과 막부 사이의 권력투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국가 체제를 재편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천황의 정치적 부상과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같은 인물들의 사상과 활동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의 격동과 불안을 생생히 보여준다.
2부 〈19세기 한일 근대사의 명암〉은 같은 시기를 살아간 조선과 일본의 선택과 결과를 비교한다. 대원군의 개혁과 조선 개화파의 분열, 메이지 유신과 일본 외교 전략의 차이를 통해 조선이 왜 근대의 길목에서 방향을 잃었는지를 되짚는다. 강화도조약부터 갑신정변, 김옥균의 망명과 죽음,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동아시아의 주요 사건을 재해석한다.
3부 〈20세기 일본사와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패망, 그리고 전후 복구 과정을 살핀다.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전개된 침략의 역사와 함께 패전 후 일본이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경제 대국으로 전환된 과정을 분석한다. 또한 한일 국교정상화, 과거사 사죄, 오늘날의 혐한 감정까지 오랜 기간 고착된 한일관계의 뿌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한다.
규탄보다 통찰을, 분노보다 질문을 택한 역사 읽기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는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구조적이고 비교사적 관점을 통해 역사적이고 입체적인 사유를 자극하고, 방대한 자료와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 역사 스토리텔링에 몰입을 이끈다. 박훈 교수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과 복잡한 사안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탁월한 통찰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균형 잡힌 시선과 단단한 문제의식에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근대 일본을 규탄만 해서는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머리는 여전히 무겁다.” 저자는 일본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매몰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일본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는가’를 묻고, 그 물음 안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를 되짚는다. 나아가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되돌아보게 이끈다. 역사는 도덕적인 교훈담을 전해주는 게 아니라 국민과 국가가 직면한 선택과 결과의 누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누적의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그렇기 떄문에 이 책은 일본사이자 한국사이고, 과거이자 현재이며, 역사책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안내서가 되어줄 책이다.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 나를 성찰하는 일, 그 길에 이 책이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